멈추지 않는 선율, 기타와 함께한 이중생활

2025-05-11     정보현 기자

“기타는 제 친구이자, 애인이자, 반려자예요.”

기타와 신경숙 회장(법학·82년졸)의 기나긴 우정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듯 갑작스레 시작됐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기타 연주가 둘의 첫 만남이었다. 1978년 우리대학 법정대학에 합격한 그는 이화 교정에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던 동아리 ‘예율회’를 목격했다. 그 순간 신 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입학도 하기 전이지만  그는 선배들에게 포부를 밝혔다. “저 예율회 들어갈 거예요!”

“기타는 나의 반려자”라고 표현하는 신경숙 회장. 그는 “힘들고 복잡한 생각이 많아도 기타만 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기타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진유경 사진기자

 

기타와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신회장을 7일, 우리대학 학문관 숲에서 만났다. 푸른 이파리 사이 나무 벤치에서 신 회장은 다리를 꼬고 앉아 반질반질한 클래식 기타를 무릎 위에 얹었다. 신 회장은 올해 2월23일 한국기타협회 첫 여성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와 한국기타협회와의 연은 2002년에 시작됐다. 13년 동안 부회장을, 2016년부터 6년간 감사 업무를 맡은 그는 “누구보다도 내가 기타 협회를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기타에, 기타 협회에 ‘진심’이었다.

 

“사실 이중생활이죠.”

신 회장은 인터뷰 중 은근슬쩍 이중생활을 고백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 법무팀에서 일하면서도 동시에 작곡 공부, 기타 강사 일을 했다는 것이다. 1991년 어느 날, 기타가 그리워진 그는 일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훌쩍 기타를 배우러 떠났다. 1년여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신 회장은 ‘큰 연주자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느꼈다. 기타 연주를 잘하고 싶어 떠났건만, 현실의 높은 벽만 체감했다. 그는 기타 연주자로서 꿈을 접었다.

그래도 신 회장은 계속해서 기타 옆을 맴돌았다. 그는 1988년, 한양대 음악대학 작곡과에 학사 편입으로 입학했다. 한양대에서 작곡 이론을 배운 그는 우리대학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에 입학했다. 동시에 현대중공업 법무팀에도 다시 들어갔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대학원도 졸업한 그는 평택대 기타 전공 실기 교수를 맡게 됐다. 여전히 그는 낮에는 서울특별시 안국동의 현대중공업 사무실로 출근한다. 다만, 이제는 퇴근해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도 평택으로 가 기타를 가르치게 됐다.

일과 기타 연주를 함께하며 치열했던 삼사십대였지만, 신 회장은 체력적으로 지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일에서 지친 마음을 기타로 달래고 기타에서 지친 마음을 일로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과 연주 각각에서 느껴지는 싫증과 기쁨이 상호보완적이었다며 “오히려 월요일 아침이 되면 설렜다”고 표현했다.

 

“할 수 없을 때까지 기타 연주를 할 거예요.”

학문관 벤치에 앉아 기타를 무릎에 올려 보이는 신경숙 회장. 진유경 사진기자

 

과거에는 전공생을 가르쳤던 그는 현재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 한남동 주민센터, 신사동 문화센터, 대치 노인복지관에서 기타 취미생을 가르치고 있다. 신 회장은 “취미 하나를 깊이 있게 즐기면 인생의 즐거움이 2배”라며, 음악의 세계에 새로이 눈을 뜨게 하는 지금의 작업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기타 음악이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라는 질문에 신 회장은 “그냥 빠져드는 거죠, 뭐”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기타는 한 번 빠지면 나오기가 힘들다”며, “기타만 치면 고민이 해소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협회 회장으로서 더 많은 기타인들이 이러한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50개가 넘는 지방 지회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기타를 전공하는 학생이나 연주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협회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