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연(緣)] 위기를 기회로, 미국변호사가 되기까지
우리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취득해 Washington D.C.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월드뱅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현재는 국내 대기업 국제법무팀에서 미국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교 4학년이 되니 졸업은 눈앞에 다가왔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에 막막했다. 고시반에 들어갈지, 로스쿨 준비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떠밀리듯 취업 준비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기업 서류 탈락은 기본이었고, 자신 있었던 면접에서도 여러 번 떨어졌다. 겨우 들어간 홍보대행사에서는 새벽 2시 퇴근이 일상이었고, 워라밸을 찾아 이직한 회사에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용기가 없어 미뤄 두었던 미국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
퇴근 후에는 LSAT 공부를, 주말엔 입시 요강을 찾아보고 원서를 준비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자니 체력적으로도 한계였고, 원하는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무작정 퇴사를 했다. 배수의 진을 치고 나를 좀 더 몰아세워 보자는 전략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선택이었지만 당시엔 불안과 조바심이 가득한 나날이었다.
다행히 입시에 성공했고, 학비 부담이 큰 미국 로스쿨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결정했다. 그런데 출국 준비를 하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의료 시스템이 한국만큼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미국에서는 사망률이 최고치를 찍고 있었지만, 로스쿨 진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모님의 걱정과 만류 끝에, 나는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미국 시차에 맞춰 1학년 1학기를 수강하기로 했다.
로스쿨에서 가장 중요한 첫 학기를 한국에서, 밤을 새워 수업을 들으며 보냈다. 그즈음엔 내가 유학생인지, 사이버 대학생인지, 그냥 인터넷 강의를 듣는 건지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결국 2학기에는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서는 생존 그 자체가 도전이었다. 극악무도한 로스쿨 공부량을 감당하면서도 코로나를 피해 다니는 미션까지 추가되었지만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늦은 시간 우버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음주 운전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역주행해 정면 충돌을 당했다. 유학생 선배들로부터 가장 두려운 것은 병원비,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앰뷸런스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결국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코뼈가 골절되었고,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변호사가 되는 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험난하고, 무엇보다 위험했다. 미국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나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두려웠다. 유학 전에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내게는 그저 ‘공부’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예상치 못한 위기들이 닥칠 때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했다. 미국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이 정도까지 힘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크고 작은 위기들이 아까워서라도, 돌아갈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억누른 채, 눈앞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로스쿨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쌓여 온 위기들이 결국 기회로 돌아왔다. 나는 감사하게도 세계은행 법무팀에서 미국변호사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업무 출장으로 UN 회의에 참석할 기회도 있었는데, 각국 대표들이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모습을 보며 국제정치학에서 배운 이론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현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글로벌 기업의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국제상거래, 통상, M&A 등 사기업에 중요한 국제 법무 전반을 배우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중이다. 한국인 미국변호사로서 한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법무를 지원하는 것은 내가 꿈꿔 왔던 업무이고, 내가 가진 강점들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자리이다.
요즘 유학이나 미국 로스쿨에 관심을 갖는 후배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유학 준비를 시작할 때 불안함과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방향에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유학길에 오르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두렵기도 할 테지만,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스스로를 믿고 가는 용기이다.
유학은 단순히 공부만 잘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맞닥뜨리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늘려 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다독이고, 때로는 쉬어 가면서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생각 이상으로 달콤한 열매와 뿌듯한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힘들고 지칠 때면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에게 손을 뻗어 보라고 조심스레 제안하고 싶다. 특히 이화 선배들은 전 세계에 포진해 있고, 끈끈한 이화의 정은 국경을 가리지 않음을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럼 후배들이 알차고 행복한 유학 생활을 보내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