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근로자의 날’ 대신 ‘노동절’ 쓰기 운동 이화지부

2025-05-04     정보현 기자

Q. 시간을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자는 말했다. A. 임금? Q. …자연을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자는 말했다. A. 부동산? Q. …그렇다면 인간을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자는 말했다. A. 노동력!

칼 폴라니는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 토지, 화폐는 사실 인간 활동, 자연, 구매력의 징표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마따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노동력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로서 이윤 추구를 위해 행동한다(고 여겨진다). 저출생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하는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장차 노인을 부양할 자원이다. 노동하지 않거나 노동할 수 없는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죽음뿐이다.

경제학과 모 강의에서 ‘천사 신드롬’이라 는 신조어를 배웠다. ‘천사 신드롬’이란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가 지어낸 말로, 자신이 천사인 줄 아는 학생을 뜻하며 당시 상황 맥락상 그 단어가 가리킨 대상은 나였다. 우리는 임금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고 ‘노동과 구성원의 생사여탈이 연결된 사회는 옳은가?’라는 질문에 교수는 ‘사지 멀쩡한 거지한테 얼마까지 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곧이어 그는 “가끔 수업 시간에 ‘천사 신드롬’을 가진 학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임금이 노동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교수는 여러 번 북한을 예로 들며 소득 보장이 게으름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노동 의욕은 모르겠고 수강의욕은 확실히 떨어져 강의실을 나오는 길에 수업을 철회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 의욕을 중요하게 여긴다. 복지 제도나 체제 변환을 논할 때면 ‘사람들은 팔자가 피면 일 안 하려고 한다’며 궤변을 내놓는다. 앞의 주장에는 세 가지 걸리는 지점이 있다. (1) 여기서 의욕은 자발적인 적극성이나 의지와는 사뭇 다른 의미다. 목숨의 위협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보통 이걸 의욕이라고하나? (2) ‘노동 = 하기 싫은 것’ 도식은 옳은가? 물론 일하기 싫다. 정확히는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다. 모든 노동에는 자아실현이 동반된다. 사회에 필요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노동 자체의 특성으로 분명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일을 무조건 하기 싫은 것으로 간주해서 사회를 퍽퍽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3) 이게 다소 황당한 점인데, 그럼 국가가 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지,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방기하나? 국가 위에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실제로 국가 위에 있는 국민이 있다. 5월 1일을 맞아 민주노총 한국 옵티칼 지회의 박정혜, 소현숙 해고자의 고공농성이 480일을 돌파했다. 민주노총 세종호텔지부(세종호텔)의 고진수 해고자는 78일을, 민주노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의 김형수노동자는 48일을 달성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삶을 내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폭력의 머리를 돌린 이들의 투쟁을 잊지 말자.)

한국에서 노동절은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로 첫 기념식이 열리며 역사가 시작됐다.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5월 1일을 노동절로 제정했고, 1958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일인 3월 10일로 일자가 변경됐다. 1963년, 박정희 씨가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바꿨다. 근로(勤勞), 근면성실하게일함을 뜻한다. 노동(勞動)이 일한다는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 것과 달리 기꺼이 임한다는 부역(附役)을 내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늘날의 근로는 사업/사업장에 고용돼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의미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근로자의 날에는 쉴 수 있는 사람과 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성인이 된 이래로 계속해서 불안정 노동(아르바이트)을 하고 있어 쉴 수 없는 사람 쪽에 속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인간의 다른 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은 하나일 수 없다. 인간은 우리고, 우리는 전부 다르다. 각기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우리를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를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하고 싶은가? ‘노동력’이라는 단순한 낙인을 거부하고, 빈칸에 자신만의 언어를 써내려갈 때, 변화는 시작된다.

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