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은 안녕하신가요, 정답 아닌 정도(正道) 따르는 글 쓰기

'통곡의 글쓰기' 극복법 생각 꽃피우며 진솔한 마음 담아주길

2025-03-16     유은채 기자

편집자주|우리대학에 입학한 모든 신입생은 <통합적사고와글쓰기(통글)>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1학년 대상 필수 교양이지만 성적을 가르는 기말 보고서의 난도가 높아 '통곡의 글쓰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본지는 김혜지 교수(호크마교양대학)를 만나 많은 학생이 기말 보고서를 작성하며 '통곡'하는 이유와 우리가 어떤 태도로 학술적 글쓰기에 임해야 할지 들어봤다. 

김혜지 교수는 "글은 훨씬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읽는 이의 입장에서 써야 한다"고 말했다. 변하영 사진기자

 

내 마음처럼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

김혜지 교수는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22학년도 2학기부터 통합적사고와글쓰기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많은 학생이 학술적 글쓰기를 특히 어려워하는 이유로 “지금까지 본인의 생각을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펼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기보다 정답을 맞혀 나가는 ‘입시다운’ 글쓰기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학술적 글쓰기는 본인의 생각을 합리적이고 적절한 근거로 뒷받침해 다른 이를 설득해야 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지금까지 해 온 실용적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와는 장르적 특성상 차이를 보인다. 김 교수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떠올리기 어려운데, (나의) 생각을 기반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하니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글쓰기를 힘겨워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이의 지적 재산을 합당하게 빌려 글에 녹이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 글쓰기는 정보를 단순 수집하고 짜깁기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논리를 정당하게 빌려 와 글의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술적 글쓰기의 시작 단계에 있기에 “다른 사람의 글을 어디까지 빌려 올 수 있는지, 그리고 정당하게 빌려 오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술적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마지막 이유는 ‘대학생이 됐으니 대학생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있어 보이는 글은 대학에서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학술적 글쓰기의 본 목적은 자기의 생각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 정립되기도 전에 수식어와 현학적인 표현으로 글을 꾸미는 것은 그 목적에 반한다. 글쓰기가 낯설어 헤매는 학생에게 김 교수는 “오히려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을 잠깐 내려놓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우선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생각이 정말 정당한지, 그리고 그 생각이 읽는 이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진솔하게 쓰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몰라서, 혹은 알면서 하는 흔한 실수

김 교수는 많은 학생이 ‘입말 습관’을 그대로 글에 옮겨 온다고 말했다. 입말 습관이란 구어체에서는 자연스러우나 문어체에서는 어색한 표현이다. 대표 사례로 △잘못된 조사 사용 △문장 필수 성분 생략 △이중피동 △‘되게’ 같은 부사어 사용 등이 있다. 글쓴이가 무분별하게 입말을 사용하면, 독자는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입시를 하면서’가 그 예다. 입시는 시험이기 때문에 ‘한다’고 할 수 없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입시를 치르면서’로 고쳐 쓰는 편이 좋다. 또 학생들이 어떤 분야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대학 학과를 선택했다는 맥락에서 ‘나는 국문을 희망했다’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완전한 비문이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국문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등으로 고쳐 써야 한다.

또 다른 실수는 문장을 억지로 길게 이어 쓰며 생긴다. 부자연스럽게 긴 문장은 읽는 이의 피로도를 높이고, 문장 성분이 (은연중에) 빠지기도 해 이해를 더디게 한다. 김 교수는 “(대면으로) 대화할 때는 화자와 청자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기에 무언가가 생략돼도 문맥을 추측하는 게 가능하고 (이해가 안 되면) 그때그때 물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글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시공간의 거리가 있다. 김 교수는 “글은 훨씬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읽는 이의 입장에서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인공지능(AI)에 의존하는 학생도 여럿 있다. 김 교수는 “글쓰기에 익숙한 경우라면 인공지능을 통해 쓴 글을 봐도 다시 한번 검토할 힘이 있지만, 학생 대부분은 글에 첫발을 내디뎠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무엇을 알고 있고 글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식적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좋은 글의 필수 조건은 '읽힐 것'

좋은 글은 읽혀야 한다. 김 교수는 “글은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읽혀야 하고, 이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선 조금은 거칠고 부족할지언정 자기의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글, 핵심이 있는 글이어야 합니다.”

제출 전 자신의 글이 ‘읽히는지’ 점검하는 방법으로 김 교수는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 읽어 보라고 권했다. 그는 “화면으로 글을 보면 모든 글이 꽤 괜찮아 보이지만, 내 입에서 자연스럽지 않다면 글로 써도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입에서 씹히는 부분, 버벅거리게 되는 부분을 점검해 볼 것을 조언했다.

통글 수업에서 배운 윤리적 글쓰기와 개요 작성법 등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자세도 글에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자료를 수집하면서 출처를 간단하게라도 메모해 놓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우리의 글에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이 필요해지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글을 더 많이 활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자료를 수집만 해놓고 나중에 다시 찾으려 하면 찾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출처를 정확히 표기하기 위해서도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호흡이 긴 글을 쓸 때는 개요를 작성하는 연습을 추천했다. 특히 고학년이 될수록 긴 글을 써야 하는 인문대, 사회대 재학생에겐 ‘역으로 개요 짜기 방법’을 소개했다. 글의 한 단락에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제목을 붙인 단락들을 모았을 때 한 편의 글로서 체계화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좋은 독자가 좋은 필자가 되는 순간

'통합적 사고와 글쓰기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 변하영 사진기자

통글 수강생은 올바른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텍스트를 읽는 방법도 배운다. 김 교수는 글의 요지 파악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두지 말고,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라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 펄 벅(Pearl Buck) 작가의 ‘대지’를 처음 접한 김 교수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서른 번이 넘게 읽었다. 처음 읽을 때 감상은 ‘중국이 배경이구나’, ‘왕룽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이구나’, ‘전족이라는 풍습이 있구나’에 그쳤다. 중학생 때 다시 읽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분명 재미가 없어 넘어갔던 이야기 속 전쟁, 기근, 약탈, 그리고 그것을 헤쳐 나가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자 ‘도대체 주인공에게 이 땅이 뭐길래 이 글의 제목이 ‘대지’가 되었을까’, 땅 덕분에 호의호식했던 아들들이 늙은 아버지를 뒤로하고 (땅을) 팔아 버리려 모의하는 장면에선 ‘작가는 이런 모습을 그리며 무엇을 의도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그는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주변의 여러 영향을 받으며 똑같은 내용이더라도 다른 부분에 집중이 되더라”며 “글을 단번에 파악하려 하기보다 (내가) 글의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고 관심이 없는지, 그리고 내 사고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집중하며 독해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넓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곡 아닌 통찰의 시간 되도록

“내가 하는 말이 정답이 아닐까 봐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교수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우리가 지내 온 환경이 달라 사람마다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의 나와 타인의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예기치 못한 문제, 위험, 또 한편으로는 행운을 맞닥뜨린다”며 “예상치 못한 일에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맞이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해결 방법을 궁리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사유를 위한 기초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학술적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마주할 학생에게 “글을 쓰기 전 글에 사용할 생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생각을 혼자 만들기 힘들다면, 토론 시간을 적극 활용해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다양한 시각을 견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본에 충실한 글을 쓰는 노력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기본에 충실한 글’이란 △다른 사람의 글을 빌려 오는 방법 △ 문장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건 △문단 구성 시 고려해야 할 부분 등 원칙을 준수하는 글이다. 그는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요행을 바라지 않고 글의 중심을 지키는 힘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김 교수는 ‘있어 보이는 글’은 “글쓰기 연습을 하다 보면 자기만의 문체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며 거창한 글이 아닌 ‘자기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진솔한 글’의 가치에 주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