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E열] 퓰리처상 사진전: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인가?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인가?

2025-03-09     백채호(도예·22)

개념 미술의 등장으로 인해 아름다운 회화만 예술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덕분에 현대 미술에서 사진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필수인 요즘 시대에 사진을 찍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SNS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이 오늘 누구와 무엇을 먹었지,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 등의 사진 업로드를 많이 하지만, 이러한 사진들에서 소소한 흥미는 얻을 수 있어도 뜻 깊은 의의를 찾기는 어렵다. 예술가의 창의성과 재능이 아닌 현실 그대로를 복제하는 이미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술성의 의의를 둔 사진과 정보 제공에 가까운 사진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럼 모든 사진이 단순히 정보만 제공하는가? 그건 아니다. 사진에 찍힌 대상이 같더라도 누가 어떤 의미를 두고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사진에 담긴 그 현장의 상황, 감정 또한 전달이 가능하며 그것으로 인해 예술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 즉 감상자들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예술이라고 본다.

19세기에 화가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해 예술이 추구하는 방향이 크게 변화했다. 그림이 정보 제공과 예술의 역할을 모두 하던 시대에서 갑자기 정보 제공을 사진이 더 정확하게 하게 된다. 그림의 역할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차별을 주기 위해 사진이 할 수 없는, 그림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 즉 야수파 같은 거친 표현들이 회화에서 나타났다. 예술이라는 분야는 이성보다는 감정을 더 추구한다. 하지만 예술의 핵심인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어렵지만,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이 담긴 사진보다는 강렬한 색상과 표현력이 담긴 그림이 감정의 본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영향으로 인해 ‘사진’을 단순히 현실을 전달하는 정보 차원의 매개체로만 여겨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이 역사에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사진을 보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면 예술이라고 본다. 이번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고 시각적으로 주는 정보의 강렬함을 느꼈다. 1917년부터 시작된 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언론 보도와 관련된 특종 사진과 특집 사진 부문에서 역사를 생생히 기록한 사진들이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1942년부터 2024년까지 세계 80년의 세계 2차 대전, 베를린 장벽 붕괴 등 강렬한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 모여있다. 그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은 ‘독수리와 소녀’이다. 케빈 카터라는 포토 저널리스트의 작품이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뱅뱅 클럽(The Bang Band Club)은 1990년 초반에 전쟁이 난무하던 남아프리카 내전을 취재하던 4명의 기자 모임이다. 즉,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속으로 뛰어들 정도로 직업 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독수리와 소녀라는 사진은 한 소녀가 급식 센터로 가는 길에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었고 그 뒤에 큰 독수리 한 마리가 그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컸다. 그에게 큰 상과 명성을 안겨준 동시에 대중들에게 많은 비판을 듣게 했다. 왜 소녀를 먼저 구하지 않은 거냐, 소녀를 방치했다 등의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과연 대중들의 말대로 그가 정말 냉혹한 인간이라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인가? 사실 그는 마음이 여린 휴머니스트이다. 우연히 소녀를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부 수단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소녀 주변에서 20분을 숨죽이며 기다리다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독수리를 쫓아냈다. 오히려 그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강력하게 보여주기 위해 ‘지금도 1분마다 전쟁과 가난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경종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라는 문장과 함께 사진을 설명했다. 그가 마주했던 끔찍한 현실은 사진 그대로 소녀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담기 위해 그는 소녀를 위험에 처한 상황 속에서 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게 그의 직업인 것이다. 그가 독수리를 쫓아내고 사진을 찍었다면, 그건 현실이 아닌 거짓된 사진이 된다.

‘암담한 현실을 앞에 두고 그 순간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 자신이 너무 밉기만 하다, 소녀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수상 후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윤리적 의식과 직업 의식의 충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자신이 '케빈 카더'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출처=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