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마병법'으로 여성 문제를 유쾌하게, 풍자 저널리즘의 지평을 연 김윤덕 기자의 시선

제41회 최은희여기자상 수상자 김윤덕 기자 인터뷰

2025-03-09     최정은 기자
김윤덕씨가 자신만의 인터뷰 철학과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노하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온몸으로 현대사를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김윤덕)

김윤덕(정외·92년졸)씨가 여성이 겪는 문제를 웃프게 다룬 칼럼 ‘줌마병법’과 인터뷰 기사들로 제41회 최은희여기자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우리대학 졸업 후 월간 ‘샘터’와 경향신문을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문화부장, 주말뉴스부장을 지내고 현재 선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기자로 일하며, 최은희여기자상은 가장 크고 영예로운 상이다. 여성 담당 기자였던 그는 여성가족부를 출입처로 두었고, 해마다 최은희여기자상 시상식을 취재했다. 그는 “작은 칼럼으로 시작한 줌마병법이 풍자 저널리즘의 지평을 열었다는 인정을 받아 뜻깊었다”는 소회를 전했다. 어린 기자일 때부터 ‘언젠가 저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던 그는 동경했던 상을 받게 돼 매우 기뻤다고 말한다.

 

기자를 꿈꾸던 학생에서 인터뷰 전문 기자가 되기까지

그의 수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김씨는 학부 시절부터 이대학보 취재기자로 활동하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 새내기 4월, 교내에 걸린 이대학보 43기 수습기자 모집 현수막을 보고 학보에 지원했던 것이 기자로서 내디딘 첫발이었다. 그는 “이대학보 취재기자로 활동하며 학내 시위와 민주화 시위를 직접 취재했고, 그때의 경험이 나를 기자로 이끌었다”고 회고한다. 김씨는 조선일보 입사 후 문화부, 그중에서도 여성 관련 기사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 토요판에서 인터뷰를 맡았고, 인터뷰에 있어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다. 인터뷰 기사로 문화부장을 거쳐 이름을 건 인터뷰 칼럼까지 쓰게 됐다. 

그는 마치 독자가 인터뷰이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도록 인터뷰를 생생히 묘사하는 것에 인터뷰 기사의 매력을 느꼈다. 33년차 기자로서 김씨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터뷰이의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타이핑하기보다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상대방이 상담하듯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하는 것이 노하우다. 편안한 인터뷰 분위기는 결국 매력적인 인터뷰 기사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인터뷰이가 일하는 곳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샘터에서 일할 때 사수의 “인터뷰이가 하는 말만 듣고 쓰는 게 아니라, 인터뷰이를 말해줄 수 있는 환경, 버릇 등의 주변 정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잊지 못한다. 미군 혼혈 아이들의 쉼터를 운영하는 목사 인터뷰를 맡았을 때,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갔더니 사수가 쉼터에 신발이 몇 켤레 있었는지, 목사의 사무실 벽에 어떤 사진이 걸려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전혀 하지 못해 혼이 났던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인터뷰에서 인터뷰이가 해준 말 그 이상을 얻어갈 수 있었다.

 

줌마병법, 여성 문제를 콩트로 풀어내다

김씨는 2007년부터 16년간 ‘줌마병법’이라는 칼럼을 연재했다. 줌마병법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등하지 않고,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연대할 수 없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해 그 해법을 넉살과 해학, 유머와 위트로 풀어낸 칼럼이다. 그는 여성 문제를 심각하고 우울하게 다루기 보다는 웃프게, 일상 언어를 사용해 다루고자 했다.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여성들에게서 소재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는 그의 칼럼에는 슬픔이 아닌 웃음이 있다. 치마 단 실밥이 다 터진 채로 지하철 공사로 출근하는 여성의 일화를 안타까움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닌, 재미있게 풀어내는 식이다. 

그의 이러한 묘사에는 당사자로서의 공감대도 한몫했다. 특히 기자는 ‘칼퇴근’이 불가능한 직업이기에 집안에서의 며느리로서의 정체성과 기자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할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맞벌이 여성이 겪는 이중 노동과 같은 소재를 하나의 콩트로 만들어, 세상의 부인과 딸, 또는 여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재미있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남편이나 가족 이야기도 콩트 소재로 많이 활용했다. 한 번은 시어머니와 남편이 요리 레시피로 싸우는 것이 웃겨 대화체의 콩트를 썼는데, 이는 직접 콩트의 대사를 녹음해 보내주는 등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던 에피소드였다. 그는 “우리집 이야기를 응용해 줌마병법을 쓰면, 아침에 신문이 배달된 후 줌마병법 페이지만 숨겨놓는다”며 웃음지었다.

 

방대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기자의 시선으로

김씨는 “기자는 멋진 직업”이라고 말한다. AI의 발전으로 기사를 인공지능이 쓴다는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과 이웃, 상대와 교감하는 인터뷰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는 우리 집안의 작은 문제부터 저출산, 계엄, 탄핵, 우리나라의 운명, 저 멀리 있는 트럼프의 생각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의 관심을 가진다”며, 기자는 스스로 안목을 키우고 비판력을 기를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의 줌마병법은 엘리트 남성 지식인에 의해 쓰인 역사가 아닌, 많은 여성들의 지혜가 담긴 여유와 재치의 집합체다. 김씨는 “줌마병법을 연재하며 할머니, 아주머니 등 많은 여성들의 지혜와 안목, 통찰력, 유머와 혜안이 높은 자리에 있는 남성 지식인들보다 뛰어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는 여유와 재치, 풍자와 넉살을 고학력층 남성들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여성들의 구술로 현대사를 다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김윤덕씨가 16년간 여성이 겪는 문제를 웃프게 다룬 칼럼 ‘줌마병법’을 연재한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채의정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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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씨가 16년간 여성이 겪는 문제를 웃프게 다룬 칼럼 ‘줌마병법’을 연재한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채의정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