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다른 삶, '색'다른 이야기...이화인 3인 신춘문예 등단

2025-03-09     이지원, 배진아 기자

2025년 신춘문예에 우리대학 동문 세 사람이 당선됐다. 당선 부문도, 나이도, 전공도 다양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녹여내 글을 쓴다. 조선일보 동화 부문 김은희(유아교육 전공 박사·09년졸)작가, 세계일보 단편소설 부문 이수정(신방·90년졸)작가, 세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 이지연(국어국문학 전공 박사과정)평론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대학보는 세 동문을 만나 글 속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라는 말 전하고 싶어", 김은희 작가

살면서 공정하지 못한 일을 겪으며 상처를 입었던 김 작가는 문단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신이 당선돼, 세상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당선작 ‘내 꿈은 빈칸’은 ‘어차피 죽을 텐데 왜 꿈이 필요한지 모르겠는’ 한 소년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어느날 소년은 집안의 기대로 대기업에 다니다 천문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삼촌과 천문대에 가게 된다. 그들은 아름답지만 금세 사라지고 마는 별똥별을 함께 보며 늘 크루즈 여행을 꿈꿨지만, 세상을 떠나 이를 이루지 못한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삼촌은 소년에게 ‘별도 사람도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존재’라며 끝이 있으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고, 소년은 다른 누구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꿈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김은희 작가는 “불행과 고난이 닥칠 때에도 결국 나 자신을 구할 사람은 나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유경 사진기자

김 작가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며 뼈저리게 느낀 경험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본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사범대에 진학한 그는 학부 시절 내면의 방황을 겪었다. 이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하며 글쓰기를 잊어버렸다가, 갑작스럽게 유방암 진단을 받으며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김 작가는 이를 계기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경험이 작품 속 ‘삼촌’을 탄생시킨 동기가 됐다. 그는 동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현실을 살아갈 때 삶의 주체는 절대 타인이 아닌 자신이 돼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 속 ‘할아버지’는 김 작가가 이른 나이에 “죽음은 내 생각과 계획대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직접 경험하며 탄생한 인물이다. 늘 크루즈 여행을 꿈꿨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국 꿈만 꾸다 떠난 할아버지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김 작가의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다.

동화 부문에 당선됐지만, 본래 그는 논문과 에세이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그러나 어느 순간 사실에 기반한 글보다 더 자유롭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김 작가는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아오다 보니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문학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고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김 작가는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써 나갈 예정이다. 그는 “수렁에서 나를 건져줄 사람도 나 자신밖에 없다”며 “나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실패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문학의 힘을 사랑으로 읽어내고파”, 이지연 평론가

이지연 평론가는 ‘죽음(들)을 건너는 ‘견딤’의 윤리: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읽기’로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이 평론가는 삶의 고통과 사랑이 담겨 있는 한강의 작품이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설명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인간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경하’가 그러하고, ‘경하’의 친구인 ‘인선’도 마찬가지다. ‘경하’는 ‘학살의 도시’에 관한 책을 쓴 후 편두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인물로,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의 광주를 기록했던 작가 본인을 연상시키는 서술자이기도 하다. ‘인선’은 제주 4∙3 사건에서 살아남은 노모를 돌보기 위해 제주에 머물며 사건의 기록을 되새기는 인물이다.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받아 ‘인선’의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죽을 위기를 겪지만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나서야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제주 4∙3사건의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

이지연 평론가는 “치열한 투쟁을 하면서도 냉소와 무기력을 느끼기란 쉬워진다. 중요한 것은 이후에도 냉소적이지 않도록, ‘견딤’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며 자신의 평론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진유경 사진기자

학부 시절 국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 문학이 인간의 고통을 재현할 때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는 이 평론가에게 오래 머문 질문이었다. 이 평론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라, 재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하는 서술자의 자기반성이자 고백”으로 읽어냈다. 주인공 ‘경하’는 4∙3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고통의 흔적을 차마 재현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것을 기록하려 애써 온 ‘인선’의 환영과 비로소 마주하는 인물이다. 이 평론가는 “그토록 아파하면서도 죽은 자의 고통에 기꺼이 연루되는 산 자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삶은 결국 ‘마비되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의 평론 제목인 ‘견딤’의 윤리를 설명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서 한강이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말했듯, 이 평론가 또한 “지극한 고통 속에서 발견되는 미약하지만 끈질긴 생명의 불빛,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한다”며 타자의 재현에 실패함으로써 시작되는 삶의 진실을 강조했다.

이 평론가는 평론을 문학이라는 지난한 여로에 놓인 촛불에 빗댔다. 그는 박경리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진실은 언어 너머에 있기에, 언어를 통해 진실에 닿고자 해도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여정을 계속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말했다. “이런 불가능의 여정에서 평론은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아니더라도 작은 촛불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이 평론가의 생각이다. 그는 현실은 어두운 곳이기에, 현실을 담아내는 문학과 그 곁의 평론이 어둡고 지난한 길 위에서 작고 희미하지만 끈질기게 타오르는 촛불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것이 문학평론의 힘이라면, 제가 앞으로 쓰게 될 글도 그런 힘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지연 평론가가 문학 비평에 참고하며 읽은 주디스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 책에는 메모와 인덱스가 가득하다. 진유경 사진기자

 

 

"어머니와 딸의 새로운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수정 작가

이수정 작가는 작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에 이어 올해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이 작가는 “신춘문예는 작품 하나의 완성도보다 작가의 잠재력을 본다고 들었다”며 “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두 번 당선됐으니 ‘소설을 써도 될 것 같다’는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덧붙여 “작가 이전에 나름 하고 싶던 많은 일을 해봤기에 이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소설만 쓸 수 있을 것 같아 늦은 나이에 당선된 데 아쉬움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당선작 ‘숨이 차오를 때’는 어린 시절 엄마의 재혼으로 이모와 살아온 여성 ‘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단축 마라톤 결승점 직전에서 쓰러진 엄마의 수영 강습을 이어서 대신 하게 된다. 어린 시절 호수에 빠졌던 기억으로 물을 무서워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엄마의 삶에 걸림돌이 됐기에 엄마가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는 것을 망설였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엄마가 초보 수영 강습에 등록한 것을 보고 어쩌면 엄마가 수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였을 수도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나’는 수영 강습을 받으며 자신을 태어나게 한 엄마의 본모습을 느끼고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을 뗀다.

책장에 기대어 웃고 있는 이수정 작가. 제공=이수정씨

이 작가는 유년 시절, 어머니의 힘든 삶을 지켜보며 소설 속 ‘엄마’를 창조해 냈다. 그는 “80대 어르신들께 당시 삶을 여쭤봤을 때, 하나같이 아프고 슬픈 삶을 사셨다”며 “어쩌면 그분들의 삶에 큰 숙제였을 자식과의 관계를 생각했고, 거기에서 남겨진 딸의 이야기가 파생되었다”고 소설이 시작된 경위를 설명했다.이 작가는 “엄마의 부재를 느껴야 했던 딸들에게 (이 소설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소설에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생생한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탈의실에서 수영장으로 걸어 나오는 젊은 남자 강사들의 모습에 할머니들이 감탄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영화를 틀어놓고 “이 대목이 제일 좋아!”하듯 두 손을 깍지 끼고 쳐다보는’으로 비유하는 식이다. 이 작가는 장면을 최대한 자세히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그에 맞는 비유를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끌어 낸다며 적확한 비유를 사용하는 나름의 창작법을 소개했다. 

이달 중순 출간 예정인 이수정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단역배우 김순효 씨'. 제공=이수정씨

이 작가는 기자, 아나운서, 카피라이터, 번역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지금의 소설가가 됐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70세의 나이에 단역 배우를 시작한 어머니의 경험을 언급하며 “나중에 다른 길을 가더라도 도움이 되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언을 전했다. 이 작가는 이달 중순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4회 신재효 문학상 수상작인 《단역배우 김순효 씨》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