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사이] 일본은 ‘완전고용’ 사회
일본은 이맘때쯤이 취업 활동에 가장 힘을 쏟는 시기다. 놀라운 점은, 3학년 여름에 취업 준비를 시작해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채용시장 문을 두드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올해 3월에 졸업하는 이들은 일찍이 취업이 결정돼 4월 입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 10월 ‘내정식’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회인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2024년 일본 대졸자 취업률은 98.1%. 취업하기로 마음먹으면 100명 중 2명을 제외하고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졸업하면 입사가 보장된 ‘내정’을 받은 사람은 10명 중 9명 이상이다. 내년 졸업예정자들은 아직 4학년 학기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39.3%가 취업이 결정됐다. 빠르면 3학년 말, 보통 4학년 중순까지 내정 받아 오히려 마지막 학기에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만끽하기도 한다.
한국은 어떨까. 우선 나부터도 휴학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주변 친구들을 보더라도, “인턴십 하느라 이번 학기는 휴학하려고”나, “취업 확정될 때까지 졸업 유예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대학 4년 성실하게 다닌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직무에 맞는 경력을 쌓는 게 일종의 ‘미덕’이 됐다. 그래야만 원하는 일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믿는 사회다. 채용 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 비중은 2024년 기준 74.6%다. 그런 탓에 요즘은 업무 경험을 쌓는 체험형 인턴에 합격하는 것도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발표된 2023년 한국의 대졸자 취업률은 70.3%다. 이마저도 조사 대상을 기존보다 확대해 나온 수치다. ‘취업률’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여전히 30%의 미취업자가 사회에서 1인분을 하려고 아등바등한다. 몇 달을 걸려 채용 전환형 인턴에 합격해도, 최종 관문인 전환에서 탈락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도 한다.
한국은 애초에 채용의 문이 좁다. 지난달 기준 구직자 대비 일자리(구인배수)는 100명당 28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적어도 3명을 제치더라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최근 국내외 정세로 인해 채용이 얼어붙었다지만, 지난해에 비해 구인배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그리 탄탄하지 못했다는 걸까. 몇 번이고 희망이 꺾이거나, 그런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생기는 불안에 ‘쉬는 청년’이 생겨난 것일 테다.
일본은 어떻게 빠른 취업, 높은 취업률이 가능한 걸까. 우선 일본은 지원자의 잠재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포텐셜 채용’을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저출생 고령화가 오래돼 일손이 부족한 탓에 기업 측에서는 하루빨리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고 한다. 일본에도 ‘인턴십’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짧으면 하루에서 5일 내외로 기업 탐방 및 체험, 간단한 업무 훈련을 받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인턴십 중 인사 담당자로부터 내정을 받기도 한다. 일본은 고용계약 당시 직무를 정하지 않고 기질이나 역량에 따라 배치하는 방식이라 이와 같은 포텐셜 채용이 가능하다. 일은 입사 후 배우면 되니, 사람 됨됨이를 보겠다는 거다. 이런 기조는 학생들도 공감하고 있었다. 건설회사에 취직이 예정된 야마자키 아라타(24·남)씨는 인사 담당자로부터 ‘인품 채용’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자신도 그렇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막 졸업하는 학생을 채용하는 방식을 ‘신졸채용(新卒採用)’이라고 부르는데, 이 문화로 인해 한편으로는 ‘늦은 취직’을 걱정하기도 한다. 일본은 1년 주기 공개채용이 일반적이라, 신졸채용이 되지 않으면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덕성여자대학교를 졸업해 올해 일본 기업 입사를 앞둔 이한은(25·여)씨도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느꼈다. 이씨가 지원했던 회사 중에서는 서류심사를 나이순으로 합격시킨 기업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대학생들 가운데 ‘하고 싶은 일’과 취직 사이 망설이는 경우도 봤다. 내가 속한 경음부(軽音部)에는 1년 동안 음악에 몰두하려고 휴학했지만 결국 취업하기로 한 이도, 아직은 음악을 더 해보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여러 경험을 쌓기 위해 휴학을 결정하는 한국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맞을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일본의 채용 문화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보다 청년의 불안이 낮다는 점은 확실하다. 한국의 고용 지표를 보면 청년들은 사회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기업은 인재 육성은 커녕 고용을 축소하거나 문턱을 높이고, 정부도 ‘경력’을 쌓게 하기 위한 땜질만 계속할 뿐이다. ‘쉬는 청년’들도 자신의 젊음을 충분히 펼치고 싶다. 청년(靑年)이 푸르를 수 있도록 실질적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