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 해방이화 깃발 아래 결집한 2657명, 학생총회와 집회에서 윤석열 퇴진 요구해

8년만에 성사된 학생총회부터 전국 각지 대학생 모인 총궐기 집회까지

2024-12-15     임수현 기자
13일 우리대학 ECC 밸리에서 8년만의 학생총회가 열렸다. 안정연 사진기자

우리대학 재학생 2657명이 참석한 학생총회(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안이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됐다. 총회는 13일(금) 오후4시 ECC 밸리에서 열렸다. 제56대 총학생회 스타트(스타트)가 공지한 개최 시각은 오후3시30분이었으나,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리며 시작이 지연됐다. 준비한 비표가 부족해 집계를 위한 대체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시작에 앞서 스타트는 각 단과대학(단대)을 호명하며 호응을 유도했고 학생들은 큰 목소리로 단대와 ‘해방이화’ 구호를 외쳤다. 각 단대를 상징하는 형형색색 깃발들도 바람에 휘날렸다.

총회 참석 인원은 2657명으로, 학기 등록생 중 1/10이라는 개회 정족수를 훌쩍 넘겼다.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개회 정족수 1412명(2024학년도 2학기 기준)의 약 2배에 달하는 학생이 모인 것이다. 이연수(통계·23)씨는 “내일 시험이라 참석을 고민했지만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보고 분노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내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총회는 ▲취지 및 안건 해설 ▲질의응답 ▲찬반토론 ▲안건 정족수 확인 및 의결 순으로 진행됐다. 찬반 투표 결과 집계 지연으로 후 순서였던 교수와 학생 대표자 등의 발언을 앞당겨 진행했다. 제57대 총학생회 스텝업(스텝업), 학내 자치 단체 대표, 교수를 비롯한 이화인이 발언했다.

참석 인원에 포함되지는 못하지만 기꺼이 연대의 장으로 나온 학생들도 있었다. 휴학생인 박수현(커미·21)씨는 의결권은 없지만 총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참석을 결심했다. 마찬가지로 휴학생인 안소원(사교·21)씨는 조금이라도 학교에 보탬이 되고 싶어 총회 TF에 지원했다. 총회 TF는 홍보 활동과 현장 운영 및 안전 관리를 맡았다. 

총회를 위한 응원의 손길도 줄을 이었다. 1960~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동문으로 구성된 이화민주동우회는 ‘해방이화는 언제나 함께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이화인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의 총회 응원 커피차를 보냈다. 학교 앞 포장마차 노점상인들로 구성된 서부노점상연합회도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붕어빵을 무료로 나눴다.

첫 발언을 맡은 송수진 스텝업 부회장은 2016년 미래라이프 대학 철회와 2018년 성폭력 교수 해임을 끌어낸 우리대학의 역사를 언급하며 “해방이화라는 글자를 빛낸 순간에는 항상 이화인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이 좌절하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힘이 생기고, 같이 분노하면 현명하게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생긴다”며 학생들을 북돋웠다. 

우리대학 시국선언에 참여한 안현의 교수(심리학과)는 안식년임에도 발언을 위해 총회 현장을 방문했다. 안 교수는 “학생들의 용기와 지혜로움에 늘 자랑스러움을 느껴왔다”며 연설의 포문을 열었다. 12.3 내란 사태와 무장 병력의 국회의사당 난입을 보고 안 교수는 “우리대학에 무장경찰이 투입됐던 2016년이 떠올랐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이화의 정신으로 또 한 번 국가와 인권을 위협하는 지도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 개개인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화인은 모두 소중한 제자”라며 많은 교수가 연대하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어 안건 해설과 질의응답, 찬반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총회 안건은 ‘윤석열 대통령 비상 계엄에 따른 탄핵 요구안 및 향후 대응 논의’였다. 질의가 없어 안건 해설 후 곧바로 찬반토론이 이어졌다. 찬반토론에서는 3명의 학생이 찬성 의견을 냈다. 학내 커뮤니티에서 대자보를 교정해 주며 대자보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운 유아린(국교·24)씨는 “윤 대통령이 비상식적 계엄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온통 갈아엎어 놨다”며 “해방 이화의 이름으로 모여 뜻을 함께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찬반토론이 끝나고 윤 대통령 탄핵 요구안 투표가 이어졌다. 투표에 참여한 인원 2453명 중 찬성 2437명, 반대 및 기권 16명으로 안건이 가결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총회 안건이 가결되기 위해선 참여 인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번 총회는 절반을 훌쩍 넘긴 99.6% 찬성률을 보였다. 찬반 투표는 학생들이 비표를 높이 들어 찬성 의사를 표명하면 찬성 수를 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3일 우리대학 ECC 밸리에서 8년만의 학생총회가 열렸다. 안정연 사진기자

집계 이후 각 단대 대표의 시국선언문 낭독과 “이화인의 외침이 이화여대와 대학가,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라는 폐회 선언으로 총회가 마무리됐다. 폐회 선언 후, 참석자들은 일제히 소녀시대 ‘다시만난세계’(2007)를 함께 부르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학생들은 핸드폰 카메라 불빛을 밝히고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2018년 총회에서 보라색 풍선을 들고 성폭력 교수를 몰아낸 보랏빛 물결을 이은 2024년의 흰 물결이었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총회의 열기를 품고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집회) 참여자 약 800명은 스타트를 선두로 한 행진 대열에 맞춰 신촌 일대로 향했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깃발과 응원봉을 흔들며 추위에 굴하지 않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요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하라!” 

행진 끝에 우리대학 학생들은 윤 대통령의 불법계엄 규탄 및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약 4500명의 대학생에 섞여 들었다. 집회는 ▲총학생회 단위별 입장 발표 및 연설 ▲개인 자유 발언 ▲다양한 문화공연으로 구성됐다. 집회 본대회는 오후6시에 44개 대학이 참여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며 시작됐다.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미래세대로서 이번 사태를 절대 좌시하지 않고, 윤 대통령과 계엄 관련자들의 책임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대학과 지역은 다양했다. 광주, 부산 등 서울과 먼 지역에서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학생들은 신촌으로 모여들었다. 카이스트는 집회 참여를 위해 13일 오후1시30분 대전에서 출발해 14일 오전2시에 학교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버스를 대절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약 20명의 총학생회장과 학생들은 트럭에 올라타 발언했다. 이창준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부산대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러 서울에까지 왔다”며 “서울이 확실히 부산보다 춥지만, 비상계엄 당시 총칼의 차가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대학 박서림 총학생회장도 발언했다. 박 총학생회장은 “대학생들은 항상 역사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왔다”며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신촌에서 전국대학생총궐기집회가 진행됐다. 안정연 사진기자

집회 중간중간 밴드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김명환(물리학과·20), 김민성(생명과학과·16), 류채린(경영학과·21), 엄다현(미디어&엔터테인먼트학과·21), 하정현(경영학과·23)으로 이뤄진 서강대 밴드 ‘킨젝스’는 서강대 총학생회의 제안을 받고 이틀 만에 무대를 준비했다. 킨젝스가 준비한 신해철 ‘그대에게’(1991)의 전주가 나오자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며 열광했다. 하씨는 “공연자 이전에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전국 학생들이 일으키는 하나의 파도 속 물방울이 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장에는 집회를 도우려는 시민들도 가득했다. 신촌 일대 상인들은 ‘윤석열 퇴진! 대학생 응원마차’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무료로 나누며 학생들에게 ‘고생 많다’와 같은 응원의 말을 건넸다. 0도의 낮은 기온이지만, 대학생의 열기와 주민들의 따뜻한 응원이 집회 현장을 훈훈하게 달궜다. 

전국 대학의 깃발과 가지각색의 응원봉은 밤까지 신촌에서 자리를 지켰다. 음성민(유교·23)씨는 “이화 구성원이자 한국 대학생으로서 세상을 향한 용기 있는 목소리에 연대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추운 날씨였지만 이화라는 울타리에 안겨 따뜻했다”고 말했다. 최은희(데사·23)씨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숨진 신촌 앞 연세로를 언급하며 “(이번 집회를 통해)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신촌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돼 현재와 과거가 맞닿아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목이 터지게 외치는 ‘윤석열 탄핵’이 거리를 가득 메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의지에 힘을 더했다. 대학생이 주체가 된 집회에서 힘차게 깃발을 펄럭이고 응원봉을 치켜든 학생들은 미래를 이끌 청년들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13일 신촌에서 전국대학생총궐기집회가 진행됐다. 변하영 사진기자

 

이대학보는 1697호(2024년 12월2일자)를 끝으로 2024학년도 2학기 정기 발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마주한 중요한 사회의 변곡점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호외를 발행합니다.

12.3 내란 사태는 단순히 일시적 사건이 아닌,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방향과 가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 판단했습니다. 이대학보는 이러한 시기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언론의 책무라 믿으며, 그 무게를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대학 사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담기 위해 이번 사태를 ‘12.3 내란 사태’로 규정했습니다. 지면에 활자로 새겨지는 이번 호외는 이화의 역사와 기억 속에 남을 중요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 호외의 제목은 ‘당신의 세계를 부수러 돌아온여성들’로, 어느샌가 자라 공고한 기득권의 세계를 부수러 돌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대학보는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화의 소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언론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호(1698호)는 2025년 2월24일(월)에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