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구호만 거창했던 이화의 ESG
“우리대학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대학의 책임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환경·안전(E), 사회공헌(S), 윤리경영(G)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웹사이트의 ‘ESG 경영’ 페이지에 적힌 목표다.
최근 몇 년 동안 본교는 이처럼 ESG라는 용어를 내걸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이와 연관된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몇 가지 예만 살펴보자. “국제 기후리스크 관리모형 ‘프론티어-1.5D’ 개발 추진을 위한 산·관·학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 “‘2021 이화 탄소중립 포럼’을 10월 20일(수) 오후 2시 교내 ECC에서 개최”, “2022 이화그린페스티벌을 진행” 등. “이화 캠퍼스 전체를 ESG의 실험장 및 연구의 장, 교육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창한 포부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의 소식으로 “본교, 금융감독원과 국제 컨퍼런스 및 채용설명회 개최”라는 2024년 기사도 등장한다. “올해로 6회째 맞아” “‘녹색전환 시대를 향하여’를 주제로 개최”되었다는 이 행사에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금융감독원, 5대 금융그룹, 삼성전자 등 쟁쟁한 15개 기업이 참여했다. 본교가 영험한 ESG의 성지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만성절에 모인 유령들처럼 ESG라는 용어가 귓가에 울리며 맴돌고 있다.
그러나 유령은 유령일 뿐, 실체가 아니다. 웹사이트의 목표로 돌아가 보자. “우리대학은” “책임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대학은” 그동안 무엇을 “구체적으로” “실천”했는지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다 살펴볼 여유는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의제인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살펴보자. 본교에는 무려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가 존재한다. 따라서 본교야말로 이 나라의 그 어느 대학교보다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학교일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사업장 또는 법인의 온실기체 배출량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실은 전혀 놀랍지 않지만―2021년(67477 tCO2eq), 2022년(72086 tCO2eq), 2023년(73133 tCO2eq), 저 ESG라는 유령이 떠돌던 매년, 학교법인 이화학당의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물론 이화학당에 본교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초중등교육기관과 병원도 있다. 그러나 병원은 본교와 직접 연관된 기관이고, 초중등교육기관이 대학교보다 더 많은 배출량을 기록했을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배출량 증가의 책임은 전적으로 본교에 있다. 자기 배출량도 줄이지 않는 주제에 ESG, 녹색전환, 탄소중립을 운운하는 것, 그게 바로 ‘그린워싱’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국제 기후리스크를 연구할 시간에 본교의 기후리스크부터 걱정할 일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본교가 주관한 행사의 참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삼성전자의 배출량은 2021년에 14494447 tCO2eq, 2022년에 14922978 tCO2eq, 2023년에 13290342 tCO2eq로 보고되었다. 2023년의 배출량 감소는 반도체 불황 탓이지 자본가의 ESG 경영 덕이 아니다. 2023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022년 대비 무려 80% 넘게 떨어졌다고 한다. 자본가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친환경 경영이란 회사를 망치는 것뿐이라는 농담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앞으로도 실적을 못 내고 쇠퇴의 길을 걸어 기후위기 완화에 본의 아니게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본교는 그렇게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예상했다면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확보했다고 그토록 자축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주목할 만한 지점은 대한민국 전체의 2023년 온실기체 배출량이 6억2,420만 톤 정도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배출량 실적과 대한민국 전체의 배출량을 비교하면, 무려 전체의 2%가 넘는 양을 이 기업이 배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 하나의 기업이 자기―한 줌의 자본가들―이윤만을 위해 그만큼 배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본교는 ‘에너지 절감을 위한 이화인 실천방안’이라는 포스터를 부착했다. “여름철 ‘전력 피크 시간대(14~17시)’의 경우 전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 주세요.” 이 “조금 불편한 삶”은 기만이다. ‘인류세’처럼 그럴듯한 개념을 들며 ‘우리 모두의 책임’을 말하는 짓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맥케이(David MacKay)가 지적했듯이 “모두가 조금씩 줄이면 합쳐도 조금이다.” 책임 대부분이 대재벌, 자본가들에게 있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이미 명백하다. 그러니 가서 삼성전자에게 말하라. 전력 피크 시간대에 공장을 멈추라고.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과 윔 카턴(Wim Carton)은 『오버슈트: 어쩌다 세계는 기후 붕괴에 굴복하였는가(Overshoot: How the World Surrendered to Climate Breakdown)』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후위기를 강화하며, 게다가 기후위기를 강화하면 할수록 자본주의는 더 강해진다.” 이게 진실이다. 따라서 지금 본교가 할 일은 거창한 ESG 구호를 내걸고 자본의 ‘그린워싱’에 동참하려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다. 에코백을 드는 대신 바닥에서 돌을 줍자. 그 돌을 기후악당 기업을 향해 던지는 편이 그 몇 배는 더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