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총여학생회, 포스텍 총여가 말하는 총여와 여대의 가치
편집자주 | 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의로 대학가에 여자대학(여대) 존폐 논란의 바람이 불고 있다. 총여학생회(총여)는 서울대와 고려대에 1984년 처음 만들어져 교육기관 내 여성 공간의 필요성을 말해왔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성평등 기구의 확대와 현실적 문제와 동떨어진 운동 방식이라는 논란에 휩쓸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9년 연세대 총여가 폐지되면서 서울 시내에 총여를 둔 대학은 모두 사라졌다. 여성 인권 의제를 주도하며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여대는 총여와 유사한 처지에 있다.
포스텍 총여 위원이자 포스텍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모담’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승아(생명과학과·21)씨를 만나 대학 내 여성 공간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현시대에서 여대의 가치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성, 젠더, 평등의 정의는 다르다. 우리가 별개의 신체로 다른 경험을 하는 이상, 성 인식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대가 지나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성별에 관한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 그 중심에 여대가 큰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대학에서 여성이 여성혐오, 성범죄, 소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상, 학생으로서의 주체적 경험을 기대할 수 없다. 여대에서만큼은 여성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한 명’으로서의 삶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여대의 강제적 공학 전환은 민주적으로도, 페미니즘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공학 전환을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충분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총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전국적인 총여 폐지는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감에서 기인한 ◆백래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총여의 존재는 역차별적이다’라는 주장이 포스텍에서도 여러 번 제기됐고, 그런 저항에 못 이겨 여러 총여가 폐지 수순을 밟았으리라 짐작한다. 과거에 비해 직접적인 여성 차별이 줄어들고, 여성 교육권의 향상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성범죄 등의 폭력에 여성이 더욱 취약하며, 여성 차별이 보다 포착되기 힘든 형태로 발전 중이기에 우리 사회에 총여는 존재해야 한다.
유일하게 남은 총여 위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학 사회에서 학생 자치에 대한 관심이 감소했고, 학생 자치 기구의 정치적 역할은 배제한 채 복지 기구로만 보는 관점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학생 자치기구는 과거와 달리 정치적 중립을 최대한 유지한 채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있겠지만, 학생 자치 기구가 개입하면 갈등이 더 커진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소수자가 침묵했을 때의 상황을 평화롭게 여기며 소수자를 묵살하려는 시각은 갈등 완화가 아닌 폭력임을 인지해야 하지만,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학생회 입지가 좁아졌다고 느낀다.
여성의 공간이 소멸될 때 한국 사회의 모습은
여성의 공간이 소멸됐을 때 곧바로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에 불편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는 집단이 사라지면 ‘정상화’됐다고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장기적 영향에 있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창구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이 불편한지도, 무엇이 문제인지도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설령 문제를 느껴도 공론화할 수 없게 되고, 비슷한 경험을 겪은 여성을 만나기 더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청년에게 ‘젠더’는 고도로 첨예하고 정치적인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젠더 담론에 대한 백래시가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백래시의 압박을 버티며 꿋꿋이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같이 버텨줄 단체가 필요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여학생의 소통 창구인 총여나 여대를 섣불리 폐지하는 것은 대학가 내 다양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백래시: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로,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