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E열] 왜 아이는 사랑을 구걸해야 했나

2024-11-24     장정윤(커미·23)

뮤지컬/홍련 (2024)

출처=뮤지컬홍련 X 계정

- “열여섯 소녀가 사랑 없이 죽어갈 때 당신들은 뭘 했지.”

 뮤지컬 ‘홍련’의 한가운데, 주인공 홍련이 던지는 메시지는 몇 번이고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뮤지컬 ‘홍련’은 2024년 7월부터 10월까지 초연을 올린 창작 뮤지컬이다. 한국의 ‘장화홍련’과 ‘바리공주’ 설화를 섞어 각색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장화홍련’의 주인공 ‘홍련’이 죽어 ‘바리공주’를 만난다. 한국 설화 두 가지를 잘 엮은 것은 ‘홍련’이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뮤지컬이라는 매력을 갖도록 했다. 홍련은 가정폭력 피해자다. 바리공주는 태어나자마자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버려졌다. 극 중 홍련의 언니 장화는 홍련을 지키며 살다 계모와 아버지 손에 죽고, 홍련은 장화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자 언니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홍련은 저승에서 신이 된 바리공주를 만나 본인이 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을 해쳤다고 주장한다. 극은 중반부까지도 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을 해친 홍련을 바리공주가 재판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극의 절정에 치달았을 때, “눈을 떠, 모든 건 너의 환상”이라는 가사와 함께 진실이 드러난다. 홍련이 망상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모든 차사와 바리공주 뒤로, 아버지에게 어떤 복수도 하지 못한 채 꺾여버린 홍련의 진실이.

Song 04. 죽어야만 해

 “언제까지 죽어야 억울함 풀 수 있나?” 홍련이 가정폭력으로 그렇게 억울했으면 관아에라도 가봤어야 한다는 말에 발끈해 뱉는 말이다. 노래가 시작되며, 홍련은 “당신들 ‘귀신’ 하면 떠오르는 게 뭐야, 아마 처녀 귀신 떠올렸을걸.”이라는 말로 운을 띄운다. 자신의 한을 좀 풀어달라는 처녀 귀신. 극에선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며 나오는 가사이지만, 이 가사가 그저 과거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귀신이 정말 있었다면 세상이 이럴 리가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귀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무언가였다면, 세상은 한만 맺힌 여성 귀신들로 뒤엉켰으리라고. 아직도 언제까지 죽어야 억울함 풀 수 있냐고 외치고 있을 여성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홍련의 ‘죽어야만 해’는 “왜! 내가 이렇게 살고 죽어야 해?”라고 소리치며 끝난다. 극에서 다루고자 했던 가정폭력 피해자들, 피해자의 형제자매들, 그 외의 모든 억울한 여성 모두를 대변하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가해자의 그늘 아래

 ‘홍련’을 보면 끝없이 눈물이 나는 이유는 비단 누군가의 억울한 피해를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홍련’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형제자매에게 초점을 맞췄다. 나의 형제, 나의 자매가 폭행을 당하고 죽었음에도 그 가해자의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 보호를 받기 위해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됐을 어린이들. 홍련은 그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그들의 끔찍하기 그지없는 심정을 잘 보여준다.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언니 장화를, 보호받고 살아남기 위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홍련의 죄책감은 그를 끊임없는 망상과 자기 파괴로 이끈다. “씻김이 끝나면 또 모든 기억을 조각내고서 자신이 살인자라 말하겠죠. 그렇게 십삼만 구천구백 하고도 아흔여덟 번째입니다.”라는 강림의 대사와 “누가 진실 같은 거 보여달랬냐”는 홍련의 울부짖음은 홍련의 끔찍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홍련은 정말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야 했을까. 홍련의 가사처럼, 장화에게 홍련은 끔찍한 방관자일까. 열여섯 소녀가 사랑 없이 죽어갈 때, 소녀를 구제했어야 하는 이는 정말 소녀의 동생이었을까? 홍련의 원망은 가해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까지도 원망하며 미워한다. 그러나 그를 보는 차사, 바리공주,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절대, 그 무엇도 홍련의 잘못이 아니다. 

“부디 너를 사랑하여 부디 너를 용서하라”

 “사랑 없는 이들 때문에 널 미워하지 마.”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려진 바리공주가 홍련을 끌어안으며 하는 가사다. 십삼만 번이나 망상을 도우면서까지 홍련을 치유하고 싶었던 이유를, 바리공주는 “나 같아서”라고 말한다. 극은 커다란 고통을 끌어안고 살던 바리공주가 또 다른 고통을 겪은 홍련을 안고 위로하며 끝이 난다. 

 “너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극 중 홍련과 바리공주의 연대에서 그들과 함께 내내 울고 웃던 관객에게까지 확장된다. 뮤지컬 ‘홍련’은 사랑 없는 이들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이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 그리고 죽어야만 풀리려나 싶은 막막한 억울함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시원한 외침과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또 다른 홍련이 자신을 탓하지 않길 바라면서.

* 극의 대사와 가사는 공식 대본집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