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학으로 새로운 사회적 담론을 이끌기 위해서, ‘82년생 김지영’, ‘딸에 대하여’ 박혜진 편집자
편집자주 |한국 근대 문학사 100년간 유령화됐던 여성 문학을 기록한 ‘한국 여성 문학 선집’. 한국 여성 문학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어 세계로 나아간 ‘82년생 김지영’. 이렇듯 한국 여성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끈 민음사 한국문학편집부 박혜진(국문·10년졸) 편집부장을 만나봤다.
여성문학이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편집자는 작가와 일대일로 소통해 글을 다듬고, 때에 따라서는 직접 교정 및 교열도 하며 원고를 완성한다. 글이 쓰이는 순간부터 출판되기까지, 더 넓은 세상에 나가기 위해 번역되고 영상화되는 그 시점까지, 편집자는 책의 전반적 생애를 담당한다. ‘82년생 김지영’, ‘딸에 대하여’ 등, 현재 한국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화화됐다는 점, 여성이 쓰고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박 부장의 손을 거쳐 출판됐다는 점이다.
편집을 맡을 작품을 고를 때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박 부장은 “사회 문제들을 가장 현재적인 인물과 상황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민사회를 향한 발화가 담긴 소설들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는 사회 참여적인 작품의 경우, 출판했을 때 독자 반응이 더 적극적이라고 느낀다. 이는 곧 다른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주며 오래도록 살아남는 긴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시민사회에 발화하는 책은 이야기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사회에 담론을 형성하고, 이 담론을 통해 긴 생명력을 가짐은 물론이거니와 이전 사회에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박 부장은 이 과정에서 문학 편집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국 여성 문학 선집’ 작업도 박 부장에게는 새로운 사회적 담론을 이끄는 일이었다. 1898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긴 시간을 다루는 ‘한국 여성 문학 선집’은 양이 방대해 편집 과정이 까다롭고, 작품을 재수록하는 선집 특성상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선집 형태의 도서는 대중으로부터 즉각적 반응을 얻어내진 못해 편집을 선뜻 맡기엔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며, “책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건 곧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도 그렇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여성문학의 현재와 미래는
박 부장은 현재 여성 문학은 “경향성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여성 문학에서 “다양한 주체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며, “최근엔 청소년 여성 주체의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는 작품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인 범주 바깥의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 부장은 “돌봄 제공자로서의 자녀를 다루고 있는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처럼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인물들을 소설이 주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여성 문학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여성 문학’이라는 영역 자체에 대한 바람보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의 문학사들이 더 활발히 시도되면 좋겠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읽히지 않은 작품들이 다시 독자를 만나고, 그럼으로써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전성기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