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혹시? 아니, 그것은 하루 하루의 힘

2024-11-03     김승구 컴퓨터공학과 강사

며칠 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가끔 메신저로 대화는 했었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햇수로 7년 만인 것 같았다. 겉모습도 달라졌지만(나이가 들었다) 무엇보다 생활 습관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 없이 혼자 생활을 이끌어가고, 또 일이나 공부와 씨름하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지거나 조급해지는 등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친구는 그런 어려움을 매일의 일과(routine)를 정하고 지켜가면서 일상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과를 정하고 자신과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어제와 사정이 다르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도 있고, 발전이 없는 것 같은 시간이 계속되면 생각보다 자주 우울해진다. 그렇게 처지는 날에는 누구나 일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잘 안되거나 잘 되거나, 죽이 되거나 밥이 되거나 하루 하루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대로, 또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대로 그냥 하면 된다. 친구는 오전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서 일과를 보낸 후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고, 공부하는 기간의 후반 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록 다운(lock down) 기간을 빼고, 겨울에 눈이 오는 날에도 최대한 그렇게 했다고 했다.

각자 처해있었던 상황은 달랐지만 내가 가졌던 경험과 친구의 경험이 공통점이 많다는, 그 경험이 성장을 위해 누구에게나 유효한 일반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사랑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글의 앞에서는 그 대상이 공부가 되었지만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과 인내를 통해 그 과정을 지속시켜야 한다. 잘 안 되거나 잘 되거나, 죽이 되거나 밥이 되거나 그렇게 꾸준히 만들어 온 하루 하루가 모여서 앎을 더욱 깊게 하고 결국 어느 순간 컵의 물은 넘치게 된다.

어떤 과정을, 리듬을 가지고 꾸준히 지속하면서 이해와 앎이 깊어지는 것을 황농문 교수는 ‘몰입’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개인적인 경험과 상황과 깊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몰입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고 정리한 황농문 교수는 이 과정을 ‘천천히 생각하기(slow thinking) - 계속 생각하기(keep thinking) - 깊이 생각하기(deep thinking) - 사색의 즐거움(fun thinking)’의 연속된 단계들로 체계화하고 일반화하기도 했다.

몰입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일과를 정하고 어떤 대상에 집중하려 해도 처음에는 잘되지 않는다. 과식을 하면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듯이 처음에는 할 일이나 일과가 소화되지 않는 것이다. 황농문 교수는 처음엔 천천히 시작하고 짧게 집중하라고 권한다. 그렇게 지속하다 상황에 익숙해지면 집중의 시간을 좀 더 늘려 나간다. 그러다 보면 살펴보는 대상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알게 되고 전체적인 모습을 점점 더 보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집중하고 있던 문제(연구 대상)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고 집중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황농문 교수도 연구 외에 강의, 학생 지도, 학교 보직에 따른 업무, 그리고 가정에서의 일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일과는 다양한 일들로 세분화되었을 것이다. 일과가 다양한 일들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최대한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는 리듬을 만들면 집중에 큰 도움이 된다.

말과 글이 길어지면 잔소리가 되기 쉽고, ‘하자’ 보다는 ‘해라’가 되기 쉬운 것 같아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의 전체는 아닐지라도 일부분 정도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부분은 일, 사람, 다른 존재 등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해라는 과정을 통해 앎을 깊게 할 필요가 있다.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르는 대상을 가까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해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지속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규칙적인 일과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과는 수단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해(또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날들이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실패를 통한 시행착오들도 많았었고 어떻게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그런 시간들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자신을 달래는 법을 알아가게 됐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삶이 늘 좋은 일들과 즐거움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신은 곧은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삶도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굽이들이 있는 것 같다.

일상의 리듬과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과정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 너는 얼마나 잘했었느냐고 스스로 물었을 때 ‘과연 내가 내 경험을 글로 남겨도 될까?’라고 계속 묻고 망설이게 된다. 이렇게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서, 부끄러운 만큼 노력하는 계기로 삼겠노라 변명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매일 매일의 일상을 통해 각자 원하는 행복에 도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