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이민 1세대에게 음악으로 바치는 헌사, '하와이 연가' 이진영 감독
“알로하!” 무조건적 사랑을 의미하는 인사말과 깊고 푸른 바다, 반짝이는 모래사장에 키다리 야자수가 드리운 곳, 하와이(Hawaii). 1903년, 이곳에서 우리 국민의 이주 역사가 시작됐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고국을 잊지 않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1세대 이주민들의 고난과 기쁨으로 가득했던 삶에, 이진영 감독(언홍영·03년졸)은 ‘하와이 연가’(2024)를 바친다.
우리는 잊었지만, 우리를 잊지 않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감독은 24살 하와이로 이주해 한국일보 하와이 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하와이 한국 독립 방송국 KBFD에 앵커로 재직했다. 이 감독은 앵커로서 김창원 회장을 인터뷰한 것을 계기로 한인 이민사를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회장은 미주 한인 최초로 하와이 주립대(University of Hawaii) 이사장을 지내고 하와이 최초 한인 은행을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발전 기금으로 150만 달러를, 한국과학기술발전원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이른바 ‘미국 하와이 한인 사회의 대부’다. 인터뷰 중 기부 동력을 묻는 말에 김 회장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락한 삶은 이민 1세대 선조들의 희생 없이 불가능했다”며 “그러니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젊은 친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어른 된 도리이자 책임”이라고 답했다. 용기 있게 삶을 가꾸었던 선조들의 사랑이 지금의 우리를 살게 했음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랑을 받았음을, 이 감독이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이 감독은 본격적으로 하와이 한인 이주사 취재에 착수했다. 1903년 1월13일, 망망대해 속 덩그러니 존재하는 작은 섬에 한국인 102명이 이주했다. 국가가 공인한 한국 이민사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통조림 공장에서 노동하며 저마다 생계를 꾸려나갔다. 여성들은 신랑의 사진만 보고 ‘사진 신부’로서 이주했다. 조선의 경제적 곤궁으로 인한 비자발적 이주였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고통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머나먼 낯선 땅에서 낯선 외국인에게 돈을 받으면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곳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후대를 위한 한인 학교 설립 기금도 모으며 삶에서 기쁨을 찾고자 했다.
‘우리는 그들을 잊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잊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 감독은 그들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는 10년 넘게 몸담았던 방송사를 그만두고 영화사 ‘나우 프로덕션’을 차렸다. 첫 작품은 이민 1세대 직계 후손의 목소리로 기록한 미주 한인 이민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6부작, ‘무지개 나라의 유산’(2021)이었다. 저예산 영화 감독으로서 언제나 영화 각본부터 홍보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던 그는 이 과정을 “오히려 엄청난 특혜”라고 말했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만 곁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인연에 대해 공동 연출자로 이름이 올라간 현 SM엔터테인먼트 IP Expansion센터 이예지 이사(언홍영·03년졸)를 언급했다. 친한 친구 사이인 둘은 ‘하와이 연가’ 기획 단계에서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갔다. 이 이사는 11월1일에 출판될 도서 ‘하와이 연가’의 소개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민 1세대에게 바치는 헌사, ‘하와이 연가’
10월30일 개봉한 ‘하와이 연가’(2024)는 초기 이민자들에게 이 감독이 바치는 헌사다. 단편 3개를 엮어 만든 옴니버스 영화로, 1부에서는 하와이 이민 역사를, 2부에서는 ‘사진 신부’ 김옥순씨의 삶을, 3부에서는 ◆한센병에 걸려 하와이 몰로카이섬의 ‘칼라우파파’(Kalaupapa National Historical Park Molokai)에 격리됐던 김춘석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남겼던 하와이 1세대 한인의 삶을 가능한 한 아름답게 담고자 노력했다. 하와이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극대화하기 위해 ◆4K 드론으로 촬영했으며, 영상미가 돋보일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부분은 화려함은 덜어내 흑백으로 제작했다. 가장 신경 쓴 연출 영역은 음악이다. 이 감독은 연주자를 섭외할 때 딱 하나만을 부탁했다 “음악으로 헌사를 쓰는 마음으로 연주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에 삽입될 연주 녹음을 위한 음악홀까지 따로 섭외했다.
그는 하와이 연가를 두고 “우리가 (이주민과) 같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미래상을 120년 전 하와이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이주 배경 청소년의 한국 적응 프로그램인 ‘레인보우 스쿨’의 2025년 예산을 7억4000만 원 줄였고,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는 등 다문화 인종의 포용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이 감독은 “다문화 사회로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당연한 수순”이라며 “선조들이 하와이의 포용적인 문화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지금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됐겠나”고 말했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와이 연가가 그러한 시사점을 남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민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하와이 연가는 10월30일부터 CGV용산아이파크몰 등 전국 40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한센병: 한센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 발병되는 만성감염성 질환
◆4K: 화면 가로에 3840개, 세로에 2160개, 총 830만 개의 픽셀이 있는 해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