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랑연구할랩(Lab)] 북한의 일상생활 연구를 통해 통일로 나아가기

2024-10-06     이유민 기자

편집자주|우리대학은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4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이대학보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692호에서는 통일학연구원 박민주 교수를 만나 북한 일상생활 속 취약계층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일 북한에서 24번째 오물풍선을 살포해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오물풍선 속에는 낡은 아동복, 몇 번씩 기워 신은 양말 등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필품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언론은 오물풍선에 대해 “북한 주민이 처한 생활고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오물풍선으로 북한 주민의 생활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전부터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을 연구한 사람이 있다. 북한 사회의 변화를 추적하는 통일학연구원 박민주 교수(북한학과)를 만나 북한 민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통일학연구원 박민주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연구하는 것이 북한 사회와, 더 나아가 북한의 정치 체제의 모습과도 연관돼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변하영 사진기자

 

북한 취약계층의 삶은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동생을 돌보며 살아온 10대 초반의 어린 청년은 추운 겨울날 동상에 걸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할 방도가 없었던 청년은 소변을 발라보라는 동네 어른의 말에 동상 부위에 소변을 발랐다. 고통을 참고 발랐더니 다음날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았다. 이 이야기는 박 교수가 청년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청년은 북한에서의 가난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북했다. 청년의 사연처럼 북한 주민들은 질병에 걸렸을 때 현대 의학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민간요법에 의존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국경을 폐쇄하며 공식 교역을 전면 차단했다.지원에 의존하던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생명줄이 끊긴 것이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이어지는 쌀 수입 경로 또한 차단돼 쌀값이 급등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위태로워졌다. 북한 주민들은 코로나19 백신을 거의 접종받지 못했으며, 다수가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려 면역체계가 더욱 취약해졌다. 박 교수는 "부의 세습,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각한 북한 내 취약 계층은 하루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북한의 빈부격차는 상하수도 체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유층은 호텔 수영장에서 목욕을 하는 등의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취약계층의 경우는 다르다. 박 교수는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해 물 사용이 어려운 취약계층은 겨울에 눈을 녹여서 세수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유니세프(UNICEF) 조사 결과, 2018년 기준 북한에서 안전한 물에 접근 가능한 인구는 전체 인구의 60.9%다. 해당 수치는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물 공급이 어려워 상하수도 체계가 마비된 북한 사람들은 햇빛에 물을 데워 아이를 목욕시켜야 한다. 북한 취약계층은 인간의 기본적 건강과 직결된 물에도 접근이 어려운 것이다. 박 교수는 총체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북한 인구의 약 50%를 취약계층으로 분류했다.

북한의 과거와 현재, 여성에 대한 바뀐 인식

박 교수는 북한의 일상생활을 "변화와 지속의 공존"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사회에는 바뀌지 않은 채 지속되는 것과 변화하는 것 모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그중 하나다. 북한에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돈으로 면허를 산 후 운전사에게 도제식 교육을 통해 운전을 배워야 한다. 면허 소지자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운전사는 주로 남성이다. 박 교수는 "젊은 여성들 또한 운전하는 것을 선망하지만, 북한에서 여자 운전사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성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는 것’에 속한다. 박 교수가 처음 북한 이탈 주민 연구를 시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 내 여성 인권 침해는 심각했다. 2010년대 초반 북한 이탈 주민을 인터뷰할 때 박 교수는 “이탈 주민으로부터 '여자가 30살 넘어 결혼 못 하면 사람값 없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도 자녀 출산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며 저출생 사회로 진입했다. 남한과 비슷하게 북한에서도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혼전 동거도 공공연해졌으며 대도시에서 혼전 동거하는 커플도 많다. 박 교수는 "인구가 적어지며 사회에 여성이 많이 진출해 여성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며 “여성에 대한 젠더 관념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북한 여성의 사회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나 증가하고 있다. 소수지만 고위급 여자 간부가 생기고 활발히 장사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등,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다. 또 다른 변화의 사례로 김정일 정권 당시 금지됐던 여성의 자전거 탑승이 허용된 것이 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여성이 자전거 타는 것이 정숙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여성의 자전거 탑승을 금했다. 이후 북한 여성들이 각 지역 간부에게 이의를 제기한 결과 2012년~2013년 전후로, 여성도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처럼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통일학연구원 박민주 교수는 “외부에서 꾸준히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하영 사진기자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

박 교수는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북한 민생 연구의 중요성을 말한다. 단순히 물, 전기 등 일회성 지원으로는 북한 취약계층이 겪는 어려움의 고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섬세하게,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파고들어야 해요." 사람의 삶에는 사회, 정책, 기술, 개인의 욕망 등 다양한 요소가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학계에서 북한을 정치, 사회, 경제 등 거시적으로만 바라보기보단 북한 주민들의 일상도 함께 연구함으로써 통일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물풍선으로 인해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 주민의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현재, 박 교수는 남한 문화 콘텐츠 공유가 북한 주민들을 돕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북한이 아무리 외부 정보를 통제하고 주민을 철저히 감시하더라도, 주민들 간 문화 콘텐츠가 공유되는 것을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 북한 밖의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전방위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아닌 외부의 삶을 제시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이 된다면 취약계층의 삶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여성 인권 유린이 심해 '성폭행' 개념 자체가 없는 북한에서도 여성이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며, 그 외 차별도 덩달아 철폐될 것으로 분석했다.

7일 통일학연구원에서는 윤후정 포럼을 진행한다. 윤후정 포럼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헌법학자이자 우리대학 제10대 윤후정 전 총장의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에 대한 소망을 기리며 2014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포럼이다. 이번 포럼에서는 남북한 두 국가론을 헌법적으로 분석하고 미국 대선과 한반도 문제를 톺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처럼 통일학연구원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