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자살 예방 대책에서도 지워진 성소수자
성소수자 자살 예방을 위해 국가는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라!
실질적인 성소수자 자살 예방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
지난 10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을 포함한 6개의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성소수자 자살 예방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성소수자는 자살 예방 대책에서조차 비가시화된다. 자살 사망자 중 성소수자 비율은커녕 전체 국민 중 성소수자 비율을 파악할 방법도 없다. 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통계 자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자살 예방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선호찬 사무국장은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하는 자살 예방 기본 계획과 자살 실태 조사에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소수자 통계는 개인과 팀 단위의 연구만 있을 뿐, 국가 단위의 기초 전수조사는 없다. 기초적인 통계가 전무한 가운데 성소수자는 제도에서 소외된 존재로 전락했다. 선 사무국장은 “(국가가 성소수자에 대한) 기초적인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자살 예방 기본 계획에 성소수자를 포함하고 자살 실태 조사 설문 항목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2023년 한국 자살 사망자 잠정치는 13,770명으로 하루 평균 37명이 자살한다. 2022년 한국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위다. 성소수자의 자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2014년 시행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3159명 중 28.4%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으며, 만 18세 이하 성소수자 623명 중에는 45.7%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동료, 무엇보다 성소수자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삶의 고통에 맞선 누군가가 자살에 이를 때 저는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가슴에서 마른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깨지는 것 같습니다."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를 지우고 배제하는 국가에 설움을 표했다. 그는 먼저 떠난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말을 이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몽 공동집행위원장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위기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권리를 유예하고 부정하는 현 상황이 진짜 위기”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동성애는 자유지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안창호 후보자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사에서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살예방 대책 부재로 이어지는 부족한 성소수자 통계
성소수자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줘야
사람들이 자기를 드러낼 텐데, 국가 조사에서 다 빠지고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니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거죠.
친구사이 자살예방프로젝트 마음연결 박재경 긴급대응 팀장은 10년간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성소수자 정신건강의 취약성을 절실히 느꼈다. 마음연결 게시판 내담자 절반은 트랜스젠더다. 박 팀장은 “제일 충격받았던 것은 중학교 때부터 몸을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상담을 신청한 사람의) 고백”이라 말했다. 그도 한 때 ‘마흔 살이 넘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치열한 지향성 고민의 시절을 지낸 당사자다. 박 팀장은 중학생 때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접하는 ‘정상성’이 자신과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라 생각했다.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극도의 심리적 갈등을 경험했고, 갈등 극복 과정은 현재 다른 성소수자의 어려움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됐다.
성소수자에 대한 국가 차원 통계가 없다는 것은 성소수자 관련 정책 마련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대에서 성소수자 건강 연구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호림 활동가는 “한국 성소수자 인구를 파악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자료가 없다 보니, 외국에서 조사한 성소수자 비율을 한국 인구에 대입하는 방법처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개인 연구자가 온라인 설문조사 등으로 수행한 연구는 한국 전체 성소수자 인구에 일반화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무작위 확률표집으로 수행하지 않은 설문조사 결과를 한국 성소수자 전체에 적용하기에는 표본의 대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 차원에서 확률표집으로 수행되는 대규모 사회조사는 표본의 대표성을 고려하기에 그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설문조사에 참여자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항을 포함하는 것이 절실한 이유다.
정부에서 5년 주기로 진행하는 자살실태조사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묻는다면 처음에는 부담을 느껴 응답률이 저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활동가는 “반복해서 묻다 보면 응답률이 올라가고 거부감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 설명했다. 성별, 연령, 소득처럼 조사에서 당연히 들어가는 인구학적 정보로 느껴지도록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반복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복적으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조사해 온 미국에서는 소득에 대한 무응답보다 성적 지향에 대한 무응답 비율이 더 낮았다.
국가가 지운 성소수자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 동성애자·양성애자의 건강불평등: 레인보우 커넥션프로젝트’(이호림 외 4인, 2017)에 따르면 동성애자 남성 중 25.7%와 양성애자 남성 중 28.7%가 자살을 생각한 적 있으며, 동성애자 여성은 34.6%, 양성애자 여성은 47.6%가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자살 실태에도 성소수자는 예방 대책에서조차 소외된다. 생명에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성소수자가 반영된 자살 예방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