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통계조사에서의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문항 추가만으로도 성소수자 삶 이해 가능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이호림 동문 인터뷰

2024-09-29     박연정 기자

암울한 현실에도 좌절하지 않고 성소수자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 있다. ‘모두의결혼’ 캠페인에서 동성혼 법제화 실현을 위해 활동하고, 성소수자 친화적 일터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는 이호림(법학·12년졸)씨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호림 활동가.  정재윤 기자

학부는 법학과, 석사는 사회복지학, 박사는 보건학을 취득했다.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나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석사 때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소수자 스트레스가 한국 성소수자(LGB)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호림, 2015)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자연스레 성소수자의 건강과 더 밀접한 연구를 할 수 있는 보건학으로 박사 전공을 선택했다.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면

외향적인 성격 영향도 있지만, 학부 때부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으로 활동했다. 내가 ‘성소수자인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산다면, 당장은 차별을 받지 않고 살 수는 있겠지만 끊임없이 나를 숨기고 자연스럽지 않게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느껴 행동하게 됐다.

 

2021년부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현장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정신건강 이해 증진 강좌를 열고 있는데, 어떤 내용을 전달하나

성소수자가 그렇게 특이한 사람이 아니며, 편견과 거리감만 해소할 수 있다면 선생님들이 공부해 온 개입 방법을 성소수자 내담자들에게도 적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현장 종사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자살 위기에 필요한 정보나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은 현장이다. 현장 종사자들이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실제 일을 하게 되기까지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배우지 못했기에 다시 강좌를 찾아 배우는 것 같다. 학부 과정이든 대학원 혹은 수련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들도 더 늘어나야 한다.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이 비성소수자보다 취약한 이유는

소수자 스트레스는 소수자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 지위로 인해 차별을 경험해 그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스트레스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면 사라질 수 있지만, 소수자 지위로 인한 스트레스는 개인의 노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계속 소수자로서 존재하기에 스트레스가 만성적일 수밖에 없고, 정신건강도 취약해진다. 차별이나 폭력 경험,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부정적 평가를 내면화하는 것 등이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결국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성소수자 자살 예방 대책은 어떤 식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성소수자들이 사회적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특수한 자살 예방 대책보다도 성소수자가 자살 위기에 놓였을 때 필요한 공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 먼저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 편견이 없어야 할 것이고,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일이 성소수자들에게 위험 요인으로 인식되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받아야 할 사회적 돌봄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다. 현장에서 일하는 종사자와 관련 기관의 인식 개선 혹은 성소수자에 관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의 성소수자 통계가 늘어나기 위해 학술 공동체 내에서 필요한 변화는

2021년까지 한국 성소수자에 관해 영어 또는 한국어로 출판된 논문은 총 1322편이다. 1322편은 매우 적은 수다. 특정한 시기나 주제를 한정하지 않고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관련 논문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에 대한 국내 연구가 굉장히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성소수자 연구에 더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를 많이 시도해야 한다. 학술 공동체 내에서 인식이 변화해야 연구를 바탕으로 정책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차원의 설문조사에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관련 문항이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나

국가 통계조사에서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관련 문항이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의 삶을 비교하는 연구 또한 가능해진다. 그동안 개인 연구자들이 시도할 수 없었던 국가 대표성 있는 자료를 통해 전체 성소수자 인구에 일반화할 수 있는 탄탄하게 분석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성소수자 관련 문항이 추가되면 성소수자의 다양한 삶의 경험 전반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이해가 증진될 수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