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사이] 블랙홀형 지자체에서 젊은 여성을 빼내라!

2024-09-22     하영은 선임기자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방문학생)
나오와 대화했던 스타벅스 테라스의 광경. 다리를 건너면 히가시야마구다. 제공=하영은씨

‘이런 정책이라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정치권에서 내놓는 ‘지방소멸’ 해결책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다. 뾰족한 대책은커녕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공약이 떠들썩한지도 반년이 안 됐다. ‘서울은 이미 메가시티 아닌가?’하며, 고향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또 한 발 멀어졌다.

최근 일본 내각이 지역 인구 균형을 위해 검토 중이라 발표한 제도가 언론, SNS 등에서 비판받고 사실상 철회됐다. 도쿄 23구에 사는 미혼 여성이 결혼을 계기로 지방으로 이주하면 최대 60만 엔(한화 약 57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것. 지방자치단체가 여는 단체 소개팅 등 혼활(婚活) 이벤트에 참가하는 교통비도 보태주겠단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길러주기만 하면 괜찮습니다.’ 이 제도에서 가장 비판받는 지점은 여성이 지방으로 이주했을 때, 취·창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X(구 트위터) 이용자는 여전히 결혼을 ‘영구 취직’으로 보고 있는 자민당의 여성관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전까지의 이주 지원금 제도는 노동력의 이동을 전제로 했는데, 이번 제도는 단순히 ‘이주혼(移住婚)’ 장려의 형태기 때문이다.

“그 정책, 여성을 도구로 보는 거잖아. 나는 결혼 같은 거 관심 없는데.” 리츠메이칸대학의 버디 나오와 카모강이 내려다보이는 스타벅스 테라스에서 지방소멸에 관해 한참 얘기했다. 나는 경남에서 서울로, 나오는 아이치현에서 교토로 대학에 다니기 위해 이주한 여성이다. 더 많은 교육의 기회, 일자리의 기회를 찾으러 왔다. “나오는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사실 나는 별로.” 서울로의 진학을 결심하고, 지방소멸 이슈를 접한 후로부터 늘 귀향에 대해 고민했다. 졸업 후 돌아가더라도 원하는 일자리도 드물 테고,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젊은 여성은 출생률에 기여하는 게 나라를, 지역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퍼져있으면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출생률이 낮아졌다는 얘기에는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가 늘 따라붙는다. 시기상으로는 맞아떨어지니 명제로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성의 사회진출 때문에 출생률이 낮아졌다고 일축하는 거겠지. 지방소멸 해결의 중요한 축이 젊은 여성이라 생각하는 것도, ‘대한민국 출산지도’ 같은 걸 만드는 것도 형태만 다르고 출발점은 같다. 지역의 존망 여부를 인구 재생산에 의한 인구 증가라는 수치만으로 산정하는 행정 사고다. 마쓰다 히로야 전 도쿄대 교수가 만든 ‘지방소멸지수’도 ‘출산 적령기 여성 인구’로 불리는 만 20~39세 여성을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눠 산출한다. 그러니 도시의 젊은 여성을 소멸위기 지역으로 이주시키면 인구 감소도, 저출생도, 지역균형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려나.

하지만 인구수만으로는 산정할 수 없는 청년 여성들의 상황과 인식, 심경을 읽지 못하면 아무리 정책을 내겠다고 머리를 싸매도 미동도 없을지도 모른다. 청년 여성이 많고 지방소멸지수가 낮다고 인구 재생산이 담보되는 것도 아니다. 단적인 예로, 서울에서 지방소멸지수가 낮은 축에 속하는 관악구, 마포구의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각각 0.39, 0.48로 최하위 수준이다. 종족 번식의 욕구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데, 본능을 거스르는 듯한 현상을 단순한 방법으로 타파할 수 있을까.

교토시도 서울과 비슷하게 출생률이 낮고 인구 유입에 의존하는, 이른바 ‘블랙홀형 지자체’다. 다른 지자체로는 도쿄, 오사카가 있다. 대학과 일자리, 그리고 젊은 1인 가구가 많다는 게 공통점이다.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2018~2022년 합계 특수 출생률은 0.76명으로 일본 전국 최저 수치다. 아사히신문 기사에 따르면 교토시 담당자가 ‘교토시에 젊은이들이 유입되는 만큼 출생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자체의 바람과 달리, 대도시에 젊은이들이 몰린다 해서 그곳에서 ‘삶’을 꾸리기엔 박한 현실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내 질문에 나오는 회사가 대부분 도쿄나 오사카에 있지만, 빽빽한 빌딩과 인파는 싫다고 했다. 대신 아이치현에는 여러 기업이 있으니 고려해 보겠다고. 도요타라는 대기업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자동차 회사는 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고향에서 살아갈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막연하게 은퇴할 때가 아닐까. 그때엔 행정구역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맨몸으로 돌아가기에는 생계유지조차 어려울 거라는 막연함이 엄습한다.

상경한 여성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돌리는 마법 같은 정책은 없을 거다. 그런 걸 기다리는 건 아니다. 다만 인구 정책에 여성들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한 정책들에 싫증 난다. 아이는 못 낳아줄지언정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도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러니 진심으로, ‘이 정도면, 조금 불편해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