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넘어 무법지대 된 5인 미만 사업장, 청년노동권 그 현실은
5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전국 고용노동관서 기관장 회의’에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체불과 같은 불법 행위를 단속하기 위함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안한데 내일부터 출근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우리대학 학생 ㄱ(영문∙20)씨는 2024년 5월, 방학 동안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의 한 요리주점에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출근 하루 전날, 그는 매니저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보 문자를 받았다. 별다른 문제 없이 한 달 동안 성실히 일해온 ㄱ씨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망연자실했다. 매니저가 ㄱ씨에게 밝힌 해고 사유는 매장의 분위기와 ㄱ씨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ㄱ씨가 일한 매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고용주는 정당한 이유가 없더라도 해고를 통보할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란 ◆상시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장을 의미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 적용받는다. 사업주들은 이를 악용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ㄱ씨가 근무한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기 위해 직원들의 스케줄표를 임의로 조정하고, 휴가를 줘서 쉬게 하는 등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이 되도록 편법을 쓰는 일도 있었다. 상시근로자 수가 5인 이상이더라도, 근로자가 5인 미만으로 근무한 날이 전체 영업일의 50% 이상이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상시근로자 2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한 ㄴ씨도 고용주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다. ㄴ씨는 우리대학 앞에 위치한 양식당에서 3월부터 8월까지 생활비 마련을 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ㄴ씨는 초반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식당 점장이 어깨를 잡는 등 불필요한 스킨십을 한다고 느꼈다. 지속적 스킨십에 불편하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 사실을 다른 알바생들에게 알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ㄴ씨는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일방적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업장에서 밝힌 해고 사유는 “오래 일할 수 있는 알바생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ㄴ씨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대한 억울함을 덜고자, 고용주가 근로자를 해고할 때 30일 전에 미리 알려야한다는 노동법 조항을 참고해 고용노동부에 해고예고수당 신고를 하고 나서야 8월 월급과 함께 해고예고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해고예고수당이란 해고 30일 전 근로자에게 해고 예고를 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가 지급해야 하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이다. 명확한 사유가 없더라도 해고를 통보할 수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이처럼 불합리한 이유로 해고 당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ㄱ씨와 ㄴ씨는 신상을 밝혔을 시 겪게 될 보복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근로기준법 주요 조항 적용 안 되는 5인 미만 사업장, 뜯어보니 허점투성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가 다르다는 이유로 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위헌이라는 지적은 과거부터 제기돼왔다. 위헌 심판 신청에 대해 1999년 헌법재판소는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고려했을 때 평등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대답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 ▲연차 유급휴가 ▲해고제한·부당해고 구제신청 ▲해고 서면통지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연장 노동시간(주 52시간) 제한 등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 11조 제1항에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하는시민연구소 김종진 소장은 “사업장 규모,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준수해야 하는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최저임금 규정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특히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2020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신원이 확인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받은 이메일 제보 216건을 분석한 결과, 68%가 해고, 임금 관련 제보였다. 이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 등 인격권 침해 ▲근로계약서·4대 보험 미가입 등 현행법 위반 ▲노동시간·휴가 등 휴식권 침해에 대한 제보가 주를 이뤘다. 이처럼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노동시간을 고용주 임의로 늘릴 수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불법이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의 노동권 보호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각지대는 청년들의 노동권 보호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공덕역 근처에 위치한 작은 일식당에서 근무한 우리대학 디자인학부 ㄷ씨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근로계약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거나 주휴수당, 야간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음을 밝혔다. 고용주가 근무시간을 임의로 줄여 기존에 안내받은 월급보다 적게 받은 ㄷ씨의 사례는 ‘을’에 위치한 청년을 향한 고용주들의 갑질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며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 우리대학 학생 ㄹ씨도 “나이가 어린 청년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이더라도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 조건을 속여 안 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ㄹ씨는 중국집에서 한 달간 일했을 당시,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했으며 주휴수당 또한 지급받지 못했다. ㄹ씨는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계약서 작성을 위해선 세무사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고용주의 말을 듣고 포기했다. 편의점에서 6달 동안 일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편의점 교육 당일의 임금은 물론, 일한 기간 동안의 주휴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 작성부터 주휴수당 지급까지,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ㄷ씨와 ㄹ씨는 자신의 신원이 특정될 때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2024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380만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2200만명 중 약 17%를 차지한다. 김 소장은“대학가에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하는데, 이 경우 정규직원보다 시간제 근로자인 아르바이트를 활용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학업과 일의 병행을 위해 시간제 근로를 선호하는 청년들이 주로 고용된다.
김문주 겸임교수(경영학과)는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60%는 5인 미만 사업장이기에 많은 노동자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해고 사유 없이 해고가 가능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에 미온적 입장이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에 적용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 영세사업장 보호”를 꼽았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할 뿐더러, 전면 적용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피고용인뿐만 아니라 고용인을 보호하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통해 노동 이슈에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올바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은 근로기준법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상시근로자: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사실상 고용된 모든 근로자로, 사업자와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