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획] “어서오세요, 현실도피 서재에”, 북스타그램 연두
편집자 주 | 흔히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 한다. 가을 날씨는 서늘해서 등불을 밝히고 책 읽기에 딱 좋은 때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극적 콘텐츠가 만연한 사회에서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독서는 어렵다는 생각에 첫 쪽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대학보는 “책은 낯설고 어려운 것이 아니며 이미 우리 일상에 있다”고 말하는 ‘애독가’들의 이야기를 1688호부터 세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인스타그램 독서 계정 ‘연두(@yeondu_book)’를 운영 중인 이한울(국제사무·20)씨를 만났다.
“우리는 평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데, 책 읽을 때만큼은 마음껏 도망쳐도 되지 않을까요?” 이씨에게 책은 또 다른 세상이다. 책을 펼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바쁜 일상을 잠시나마 뒤로한 채 쉼을 얻는다. 그는 자신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 ‘연두’라는 이름으로 독서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름 방학의 중간점에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던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그의 책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설 중독 이대생, 연두의 책 추천
독서 기록을 시작한 뒤 이씨가 읽은 책은 500권 이상. “세상에 있는 좋은 책을 모두 읽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그가 독서 계정 운영을 시작한 것은 2023년 7월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책 필사를 계속해 왔지만, 좋은 문장들을 시각적 자료로 남기면 더욱 기억하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독서 기록 용으로 시작했던 이씨의 계정은 2024년 8월29일 기준 약 7.2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계정 운영을 시작한 지 1년 만의 결과다. ‘마라맛 주의 피폐 소설’을 추천하는 인스타그램 숏폼 콘텐츠 릴스(Reels)가 인기를 끈 덕분이다. 책 추천 릴스에는 책 표지와 이씨의 짧은 감상평이 담긴다.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에는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소설 추천을 주력 콘텐츠로 삼는 만큼,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 종류도 소설이다. 그가 말하는 소설의 매력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삶에 완전히 이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자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와 달리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소설 속 세상을 상상하며 인물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랑 글밖에 없는 책에 푹 빠져 있다가 현실을 자각하며 완전한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가장 신기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연두 계정에서 책 추천을 하는 것은 이씨만이 아니다. 이씨의 팔로워끼리도 책 추천이 오간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달라’는 메시지가 감당할 수 없이 쌓이자 공동 작업 플랫폼 패들랫(padlet.com)을 활용해 팔로워끼리도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했다. ‘우리만의 현실도피 서재’라는 이름을 가진 패들랫 게시판에서 팔로워들은 메모를 남기고 자유롭게 책을 추천하며 서로의 추억 속에 있는 책도 찾을 수 있다. 팔로워들과의 공간은 어느덧 이씨에게도 소중한 공간이 됐다. 그는 “바쁜 생활을 잠시 뒤로하고 도망친 곳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안락한 일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연두) 계정을 더욱 소중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서가 교양이 아닌 일상이 되도록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성인 독서율은 조사를 시작한 1994년 이래로 역대 최저를 달성했다. 1년간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은 43%에 불과했다. 그러나 젊은 층 사이 ‘독서는 힙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2024년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관람객 15만명을 넘기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타인에게 ‘독서하는 자신’을 보여주며 독서 행위 자체를 유행의 일종으로 여기는 문화가 서울국제도서전의 성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씨의 팔로워도 10대⋅20대 여성이 약 80%를 차지한다. 이씨처럼 본래 책을 즐기는 애독가도 있지만,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이들도 있다. 이씨는 “‘원래는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는데, 연두님 덕분에 이번 달에는 5권이나 읽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 제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비일상적인 취미로 여기기보다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즐길 수 있는 취미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두의 다음 페이지는
집 앞 도서관에서 공부하겠다고 나와 책만 실컷 읽고 돌아가던 중학생이 어느덧 사회 진출을 앞둔 대학생이 됐다. 금방 질리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오랜 시간 변치 않았지만, 책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불안정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독서 계정을 운영하며 좋은 책을 타인과 나누는 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깨달았다. 현재 이씨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덕업일치’를 꿈꾼다.
이씨의 최종적 목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는 “부를 주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을 마련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금주령이 내려진 1920년대 미국에서 비밀의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던 술집 ‘스피크이지바’(Speakeasy Bar)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란한 공간이 그가 그리는 공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