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드는 한국의 미, 왈자 아트&디자인 스튜디오
함께 작업하기를 소망했던 두 중학생의 꿈이 파리까지 날아갔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테리어, 디자인 박람회인 파리 메종&오브제(Masion&Objet·박람회). 두 중학생의 꿈이 첫 발을 디딜 장소다. 2024 추계 박람회에 한국의 미(美)를 선보일 왈자의 김윤지(조소·20), 한어진(도자예술·20)을 만났다.
유럽에서 마주한 ‘낯섦’에서 가능성을 찾다.
김씨와 한씨가 창업을 결심한 건 휴학하고 떠난 유럽 여행에서였다. 프랑스 하면 에펠탑과 바게트가 연상되듯 유럽 국가들은 저마다 특유의 색깔이 있었다. 해당 국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한국인의 눈으로 본 유럽의 색채는 낯설기에 아름다웠다. 김씨와 한씨는 여기서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창업에 확신을 얻었다. 한국인이기에 제일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세계인들에게 낯선 아름다움으로 다가가 경쟁력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사람은 귀국하자마자 한국만의 보편적 정서와 문화, 미의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6개월 뒤인 2023년 12월, ◆아트&디자인 스튜디오 왈자의 첫 작품이 나왔다
유럽 여행 이래로 계속된 휴학에 여전히 학부생 신분이던 두 작가에게 있어서 창업은 큰 도전이었다. 한씨는 “학생일 때는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는데 (창업한 지금은) 작품 제작부터 운영, 홍보를 비롯한 경영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게 처음인 데다가 할 일도 많았던 두 사람은 왈자를 시작한 이래로 여태 제대로 쉰 적이 없다. 하지만 한씨는 “어떤 상황이건 간에 열정과 끈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이어질 작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대학생의 신분이기에 지금의 왈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종합대학인 우리대학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접할 수 있었고, 대학에서 학부생에게 제공하는 여러 창업 지원 제도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우리대학 디자인 학부의 창업 수업에서 현역 작가들의 강연을 들으며 꿈에 확신을 가졌다. 기업가 정신 연계전공 수업을 수강한 두 사람은 “예술 방면 외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라고도 덧붙였다. 우리대학 100주년 박물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씨는 “찾기 어려운 희귀한 자료도 우리대학 박물관에는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화에서 보내는 시간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될 왈자 작업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가로 曰, 스스로 自: 스스로의 정체성을 말하다.
그렇게 탄생한 왈자는 한국적인 미를 주제로 평면과 입체,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하고 있다. 왈자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문화 예술 시류를 이끌던 예인 집단에서 따왔다. 한자로는 가로 왈曰에 스스로 자自를 사용해 작가로서, 한국인으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왈자가 보여주는 한국만의 아름다움은 형태를 넘어선 본질에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한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음과 양’, ‘여백의 미’, ‘기운’과같이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의 본질을 다룬다. 한씨는 이를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있는 미의식을 깨우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작품의 소재를 전통 물건에 한정 짓지 않으며, 현재 우리가 유전자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코드를 ‘추출’한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해석한 왈자만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간다. 두 작가의 전공은 조소와 도자 예술이지만 현재 그들은 ◆아트 퍼니처를 다루고 있다. 갤러리와 상업 공간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삶에 스미는 아트 퍼니처에 매력을 느껴, 익숙한 전공 분야 대신 아트 퍼니처를 선택했다. 아트 퍼니처를 통해 세계인의 일상에 한국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그들이 아트 퍼니처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왈자’가 하나의 현상이 될 수 있도록
왈자가 2024 추계 박람회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동양 철학과 한국의 미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음과 양의 조화를 활용해 한국적 비움과 채움을 이야기한다. 왈자의 신작 가운데 하나인 ‘백장白欌’은 ‘여백의 미’를 주제로 한다. 그릇은 비워야 채울 수 있기에 “그릇의 본질은 비움에 있다”라는 노자의 말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왈자가 만든 ‘백장白欌’ 의 가느다란 스테인리스 선이 엮인 망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비어있거나 채워져 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선들이 이어져 벽처럼 보이지만 사선으로 이동하면 단순한 벽이 아닌, 공기가 통하는 ‘망’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백장白欌’은 채움의 잠재력을 지닌 비움을 보여준다. 한씨는 “한국인인 우리한테는 익숙한 개념들을 해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각적 재미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공동 작업을 꿈꾸던 두 중학생을 파리로 보낸 동력은 ‘왈자를 하나의 현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조선 후기 왈자패가 문화 예술 시류를 이끌었던 것처럼, 왈자는 현대의 한국 작가들과 한국인의 ‘무의식 속 미의식’을 깨우는 ‘현대판 왈자’가 되길 꿈꾼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한국인인 우리 안에 있으니까요.”
왈자는 지금 2024 추계 박람회 직후 열릴 첫 번째 개인전 ‘여백 위의 먹 한 방울: 존재감을 만드는 법칙’을 준비 중이다. 한씨는 “개인전에서는 예술품을 만드는 왈자로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보여드릴 것”을 예고했다. 개인전의 제목에는 왈자의 작업 철학이 담겨있다. 한씨는 “비어있던 곳에 점이 찍히는 순간, 그 점은 주위의 온 신경과 기를 빨아들이며 시선을 집중시키고 흰 배경은 의미를 지닌 ‘여백’이 된다”며, 먹 한 방울처럼 왈자가 만드는 오브제가 공간을 변화시키는 존재감을 지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트&디자인 스튜디오: 순수 미술이라는 아트(art)와 실용적 목적을 가진 디자인(design) 모두를 포괄하는, 브랜드와 작가 그 사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예술 작업을 하는 곳.
◆아트 퍼니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계에서 가구 대신 사용되고 있는 말로, 일상과 예술의 간격을 좁히는 가장 친근한 예술품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