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준비된 삶을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큰 사회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인구 고령화라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9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를 차지하고 있고, 이 비율은 2025년 20.6%, 2050년에는 40.1%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통계청의 자료는 한 번쯤은 대부분 들어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올해 초 개봉한 ‘플랜75’(2022)라는 일본 영화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매우 충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하는 ‘플랜75’라는 정책을 도입하는 가상의 설정을 배경으로 합니다. 국가는 준비금 10만 엔을 주고 개인별 맞춤 상담 서비스, 장례 지원 절차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가족과 사회의 부담으로 여겨지는 고령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결국 사회적인 부담을 줄이고 국가의 경제적인 안정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선택권’을 준다고 하면 왠지 이상적인 프로그램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있어 진정한 선택이 가능할까요? 영화에서 75세 고령의 주인공 ‘미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혼자 살아갈 길이 막막해지면서 플랜75 신청서를 작성합니다. ‘요코’는 플랜75 신청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을 진행하는 콜센터 직원이지만, 사실 플랜75 신청자들이 신청을 중간에 취소하지 않고, 삶에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끝까지 유도해야만 하는 업무를 전달받습니다. 즉, 플랜75 참여자는 죽음이라는 선택을 사회와 국가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강요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장수(長壽)는 개인적으로 축복이며, 고대로부터 모든 이들이 염원하던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수가 삶의 축복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왔습니다. 오히려, 늘어나는 노인 인구가 가족 내 부양, 노동시장, 주거, 사회보장, 보건의료시스템과 같은 다양한 개인-사회경제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인식과 함께, 고령화는 개인과 사회의 부담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노인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플랜75는 바로 노인을 경제적 논리에 의해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노인’ 하면 어떠한 이미지를 갖고 있나요? 나약하고 무력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노년기에 이르러 더 이상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면 사라져 주는 게 주변인과 사회에 도움이 될까요? 근본적으로 우리에게는 정말 누군가의 생이 다른 누구의 것보다 경제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가 있는 걸까요?
노년기의 건강과 장애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로서, 노인혐오와 고령화 문제를 다룬 위 영화가 더욱 저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는 했으나, 사실 영화 플랜75는 노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의 경제적 가치를 부정당하는 사회적 약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생산성과 존재 가치로 평가받는 것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게 합니다. 생산성이 낮거나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부담으로 간주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를 돌 아보게 만듭니다.
한편, 이러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보호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고령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자립적 생활 의지와 능력이 있었던 주인공 ‘미코’가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면, 취업을 위한 교육, 훈련, 상담 등 다양한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면, 노년기에도 일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과 정서적 지원이 있었다면, 그녀는 플랜75를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존중받고 보호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입니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준비된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끝까지 행복하기 위해, 누구나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이는 생산성이나 경제적 가치로 측정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가치임을 여러분 모두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노인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보다 포괄적이며 또한 세심한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함께 이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 나와 타인 모두의 가치와 행복을 생각하는 노력의 여정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