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랑 연구할랩(Lab)] 여성과 평화의 가치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한국여성연구원
편집자주|우리대학은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4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이대학보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685호에서는 한국여성연구원 이은아 원장을 만나 기관이 설립된 역사와 여성학의 발전,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사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8년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미투운동과 불법촬영, 성매매, 성폭행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범죄 사건 버닝썬 게이트, 2020년 성착취물이 유포된 N번방 사건 등을 거치며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해결되지 않고,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해 발생하고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에 관한 학제적 연구를 수행해 성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삶의 질 향상, 사회의 공동선 실현에 기여하고자 하는 기관이 있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여성문제와 성차별에 대한 학제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여성연구원이다.
여성 교육의 허브 역할을 하다
여성학은 모든 분야와 긴밀히 연결된 학문이다. 법, 미술, 경제, 정치 등 모든 학문에서 여성과 여성주의적 시각이 빠질 수 없다. 그러므로 젠더는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이러한 여성학이 우리대학에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대학은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 기관으로서 여성을 교육해 왔다. 여성에 대한 담론을 지속하고 연구하려는 여성학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1976년 우리대학에서 여성학 연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여성들의 삶의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새로운 지식으로 맥락화할 수 있는 기관의 필요성이 인식되며 1977년 한국여성연구원이 설립됐고, 1977년 9월 한국 최초의 여성학 강좌가 우리대학에 개설됐다. 당시 여성학 수업은 우리대학에서 교양 수업으로만 존재했으나 한국여성연구원에서는 여성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제도화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1982년 3월 아시아 최초로 대학원에 여성학 석사 과정이 만들어졌다.
이 원장은 "여성학 석사 과정이 만들어지며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배우는 지식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질문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특히 배움을 확장하는 단계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수학 문제를 풀 때 여성은 머리가 길고, 장신구를 하는 등 성역할 고정관념이 드러난 삽화가 포함된 문제만 접하게 된다면, 어려서부터 성 고정관념이 마음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이 원장은 "성별 고정관념이 여성 지식인을 키워내기 어렵게 할 수 있기에 이를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공부해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과 평화를 향한 끝없는 관심
현재 한국여성연구원에서는 '여성과 평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연구 사업과 활동을 진행한다. 과거 전쟁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 속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인권침해 문제는 만연했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여성이 과거 민족주의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말하는 담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적 폭력을 여성인권의 이름으로 비판하는 페미니즘 관점과 식민시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식민주의적 사고에 반대하는 관점인 포스트식민주의적 노력의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여성연구원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다루는 것은 군 ‘위안부’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고통이 민족의 상징으로 은유·상징화되며 피해자 여성의 문제가 전면화되지 못했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여성과 평화'라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돼 많은 여성이 피해를 입은 사실에 대해 국제워크숍을 개최하고 한일 시민연대 관련 연구 학술 성과를 정리해 논의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도 이에 큰 책임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직시하고 있다”며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군 ‘위안부’ 문제를 발굴하고 문제화함으로써 일본과 한국 시민들이 연대해 평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원장은 “여성 인권 측면에서 국제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논의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연구원에서는 ‘여성과 평화'를 주제로 한 북토크,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2일에는 2023년도 ‘여성과 평화’ 학술상 일반 부문 수상작인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2021)의 저자 김영옥 작가가 페미니스트로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북토크 행사를 진행했다. 이러한 행사들을 통해 한국여성연구원은 여성과 평화 연구를 계속할 신진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새로운 연구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여성을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한 이유는
이 원장은 “오늘날 학생들이 여성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대학에서 여성학을 배운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대학생들에게 직접 여성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여성학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구조적 성차별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학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축소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여성연구원은 청년들이 여성학을 공부하는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페미니즘이 젠더 갈등으로 변질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청년들이 여성학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여성학이 학문적 기반을 굳건히 다져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며 학술적인 장을 만들고, 이를 책으로 기록하는 기관이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이 원장은 학창시절 우리대학의 교육 이념이 ‘여성의 인간화’라고 배웠다. 여성의 인간화란 인간으로서 여성이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여성이 사회에서 배제됐던 부분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이런 우리대학의 교육 이념을 토대로 “우리대학이 여성 연구를 하는 중심 기관으로서,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고 기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연구원은 앞으로도 여성과 평화 주제를 비롯한 여러 여성 관련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2023년부터는 해양경찰 업무와 조직 구성의 변화에 따른 성평등 정책의 중장기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양경찰 조직의 양성평등 실태를 진단하고, 이에 따른 성평등 정책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한국여성연구원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정책 연구를 지속할 것이며, 학생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세미나를 기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