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사랑하는 세상을 전하기 위한 분투

2024-05-26     하영은 미디어부장

 

사실을 전해 마음을 얻는 일. 저널리즘의 정의와 목적에 관해 한 문장으로 말해야 한다면 지금 내게 가장 와닿는 표현이다. 물론 무엇이 사실인지, 어떻게 사실을 전하는지 손쉽게 해명할 수 없다. 기자를 꿈꾸고부터 풀리지 않은 의문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분명 어떤 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 순간을 사람이 포착해 사람에게 전달한다. 인지하고,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한다. 전할 수 있는 건 ‘재현된 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 옳다고 믿는 것을 상대가 공감할 수 있게끔.

알면 사랑한다. 곧 알지 못해 미워한다고 믿었다. 내가 사랑하는 세상과 존재들을 알리고 싶었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들은 집단의 표상으로만 나타나 그 속의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집단으로 보게 되면 쉽게 낙인찍히고, 개인의 결점도 집단의 특성이라고 흠집 낸다. 멀리서 바라보면, 뭐든 말하기 쉽다. 그게 혐오일지라도. 

장애인에 관해, 장애인의 삶에 관해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모를 거다. 이화의 장애인 고용에 관한 영상을 만들며 싸워야 했던 편견은 ‘장애인과 일하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효율로만 봐도 되는가’에 관한 가치판단의 영역까지 타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특수교육과 이소현 교수님 인터뷰가 크게 와닿았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 훨씬 유능하고,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오래 앉아 있는 걸 잘한다고 하셨다.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라, 여러 특성 중 장애로 규정된 것을 가진 사람이다.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사실’은 힘이 강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어렵다지 않나. 공들여 현상을 잘 짚어낸 다큐멘터리나 르포 기사는 큰 울림을 준다. 사실만으로 설득할 뿐 아니라 마음을 흔든다. 그렇기에 사실을 전제로 하는 매체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을 내보내기 전 끊임없이 확인하고 의심해야 한다. 잘못된 정보가 전달됐다가 그것을 믿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사소한 오류로 모든 메시지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그게 겁나서 기자로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고민하며 학부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내가 확인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까지 말할 수 있을까. 알면 알수록 어느 하나 쉽게 얘기하기 어려웠다.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이대학보 미디어부에 들어왔다.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만큼 비판하고 싶은 세상을 알리기 위해 분투해 봐야 하지 않나. 이왕이면 제작할 시간이 많이 주어진 것을 방패 삼아 내가 하던 고민을 이어갔다. 그런 것 치고 아쉬움도 많이 남은 1년 반이다. 미디어부는 부서 내외부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매번 재구성했고, 내가 부장을 마칠 시점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저널리즘 환경의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했다.

단지 사실을 더 잘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로 쓴 기사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영상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정말로 이 사람이 말했다는 신뢰가 생기지 않을까. 투박하더라도 현장 그대로를 담아내면 더 잘 와닿지 않을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쉽게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고민한 만큼 영상의 매력을 십분 살린 작품은 많이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학기 미디어부장을 맡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미디어부의 역할과 가능성에 관해 여러 사람과 논의하고, 실현해 보고자 했다. 현 정치 환경에서 청년 정치인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풀어낸 ‘국회 안티에이징’이 그 시작이었다. 다양한 제도와 법령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 했고, 인터뷰이의 말이 힘 있게 전달되도록 관련 자료들로 채웠다. 청년 정치인을 위해 만든 청년추천보조금이 무용지물이 된 현상과 그 배경을 다양한 차원에서 검토했다.

창간 70주년 기념 영상을 기획하면서는 역대 이대학보 기자들의 증언에 몰입감을 주고 싶었다. 인터뷰이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실제 기사와 사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자료로 남아있는 것과 선배의 취재기를 교차 검증해 이대학보의 역사를 기록했다. 

지금은 이대학보 기자로서 마지막 프로젝트로 인터랙티브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 글과 사진, 영상과 음성을 적절히 활용해 독자들이 즐기면서 문제를 인식할 수 있을 방법을 고민했다. 읽는 사람이 ‘내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얻는 일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상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마주하지 못한 것이다. 알게 되면 무엇이든 느끼게 되고, 그게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고 믿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재현하고 오롯이 전달하는 일. 한 명에게라도 닿아 내 세상을 공유할 수 있길 바라며 취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