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22세 청년이 22대 총선에게
이대로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을 해결할 대책을 공격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정부는 아이를 낳고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제시하는 정책들은 아이를 낳을 것을 전제에 두고, 아이를 낳아야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시한다. 돈도 주고, 집도 주고, 아이를 낳아도 변함없이 일을 하게 해주고, 나라가 함께 아이를 돌봐 준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뚝 떨어지는 M자형 그래프를 보인다. OECD 평균이 역U자 형태인 것에 비하면 특이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만큼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일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은 국가가 또 있을까. 나도 아이를 낳으면 저 그래프 속 여성 중 한 명이 돼 어디론가 뚝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돈을 준대도, 집을 준대도 아직 내게는 아이를 낳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는 삶이 매력적이다. 사실, 지금 정치권에서 내놓는 대안들이 진작에 실현되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의심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3월 초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임신중지권을 보장했다. 베르사유궁전에 모인 852명의 국회의원 중 780명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힘을 보탠 것이다. 이로써 프랑스 헌법 제34조에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프랑스는 1975년부터 임신중지권을 합법화해 임신 14주까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했다. 이를 헌법에 명시한다고 당장 변하는 것은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미국의 '로 vs 웨이드'(Roe vs Wade) 판결 번복처럼 여성의 임신중지권이 몇 사람의 의결로 퇴보할 여지는 줄어든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비가역적인 선택이다. 열 달 동안 생명을 품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어떤 여성도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지 직업이나 생활에서의 자유를 보장받고 싶은 이유만이 아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결심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여성의 임신중지를 규정하는 명확한 법이 없다.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를 결정하면서 법에 공백이 생긴 탓이다.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법의 공백을 메우고자 각자의 개정안과 법안을 내놨지만 2020년 12월 입법 기한까지 무엇 하나 합의되지 못하는 바람에 죄는 사라지고, 병원마다 다른 기준에 불확실함만 남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임신중지와 관련한 법률인 모자보건법을 보완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정당은 없다. 낙태죄를 부활하겠다는 정당은 있는데 말이다. 2023년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 수많은 영아 유기, 살해 범죄들도 이러한 입법 공백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먹는 낙태약을 음지에서 사고파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아이도 죽고, 여성의 건강도 담보하지 못하는 꼴이다. 오늘날 제시되고 있는 저출생 대안들은 모두가 원하는 임신과 출산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선은 여성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법을 탄탄히 고친 다음, 양육자와 아이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제도를 새로 만드는 게 맞지 않나. 밑 빠진 독에 물만 열심히 붓는 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선거에는 여성 청년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저번 총선에는 포털뉴스 전면에서 내 언니뻘의 여성들이 몇 명 보였던 것 같은데. 새삼 이 사회에서 여성이 설 자리가 모호하다는 게 느껴진다. 멋진 사회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대학생으로서, 어쩌면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 임신중지와 동떨어지지 않은 한 명의 가임기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의 여성 청년으로서 그 불안을 함께 해결해 줄 국회의원이 4년 동안 보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달간 총선 관련 취재를 진행하면서 인터뷰한 많은 여성들은 ‘내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인을 찾고 있었다. 학업을 위해 서울로 온 우리대학 학생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 청년단체가 대학생이 지역구 의원의 타겟이 아닌 것에 분노할 때도 결론은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는 할 것이다. 20대는 투표율이 낮으니까 후순위에 둬도 된다는 안일함에 작은 경종을 울리도록, 정치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라는 관념에 금이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