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새로운 우파의 ‘제1의 길’,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에 기반한 좌파의‘제2의길’, 이제 이러한 대립을 통합하는 새로운 노선‘제3의 길’이 유럽 중도좌파와 함께 부상하고 있다.

특히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의 이론적 기반이 된 기든스의‘제3의 길’은 우리나라에서도 뜻밖의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유럽 중도좌파의 성격은 2차대전 중인 1945년에 집권한 영국 노동당이 국가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개념을 도입한 것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좌파에 의한 국가의 과도한 팽창과 개입은 효율성 저하, 복지제도의 악용 등 영국병이라는 국가실패를 가져오고 이에 80년대 이후 우파 대처리즘에 의한 자유주의적 처방이 시작된다.

또한 유럽대륙에서도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공산진영이 멸망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북지국가의 전형인 스웨덴에까지 우파정부가 들어선다.

이들 우파정부는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 구조조정 등을 추진했으나 빈부격차·고실업이 심화되고 좌파야당과 지식인, 노동조합과 시민운동의 저항이 커지면서 다시 좌파정당이 정권을 잡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현재 유럽연합 15개 회원국 중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13개국에서 중도좌파가 정권을 장악했고 스페인고 아일랜드만이 우파가 집권하고 있다.

노동당이 단독집권한 영국, 사회당·공산당·녹색당의 연합정권인 프랑스, 그리고 사회민주당·녹생당 연립정부인 독일 등 서구 중도 좌파정권들은 다양한 정부형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정치적 상황이 다른만큼 대륙의 중도좌파정권들은 다양한 정부형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정치적 상황이 다른만큼 대륙의 중도좌파와 영국은 차이가 있고 각국이 명시적으로‘제3의 길’표방하진 않으나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좌파정권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대체로 수용하면서 기존의 과도한 복지정책을 부정, 사회주의적 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급진중도노선을 주장한다.

노동계급을 대변했던 좌파는 노동자계층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신중간계층을 정치적 기반으로 설정하고 변화를 시도한다.

‘제3의 길’이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사회정책인‘적극적 복지’의 개념은 자율성과 개인적·집단적 책임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에게 소급시키고 있으며 소외계층과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복지정책으로 내세오는 노동과 교육기회의 평등이라는 것도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후의 상황은 능력에 맡긴다는 권리의 형태이기에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최형익 강사(한신대 국제관계학)는 “중도좌파의 복지·사회투자국가의 개념은 생산주의적 관점에서 인적자원을 총동원하자는 것으로 결국 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소외계층과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재집권의 성격은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를 관리 조절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며, 영국 블레어정권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내일신문 주섭일 편집고문은“유럽대륙의 중도좌파는 신자유주의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하고 완화시켜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중시한다”며“특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좌파정부에 녹색당이 참여해 21세기 정치는 환경문제를 중시하고 삶의 질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중도좌파의 움직임들은 신자유주의와 모순 혹은 갈등관계는 아니지만 경쟁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유난히 한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제3의 길’. 김대중 정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제3의 길이 한국사회에 적용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현실에서 구조조정,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부담전가를 합리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최갑수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는 “다양한 사회계층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현실에서 제3의 길을 얘기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다.

‘제2의 길’의 역사적 경험 여부가 아니더라도 IMF의 신자유주의적 처방하에 있고 노동자의 정치적인 독립도 보장되지 못한 사회에서‘제3의 길’이라는 이상은 집권층이 내세우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공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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