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김영원 사진기자

매일 오후12시30분, 주한 러시아대사관 근처 정동길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점심시간 길을 오가던 행인들이 잠시 걸음을 멈춘다. 이내 그들은 파란색과 노란색이 배합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다. 본교 배일환 교수(관현악과)가 기획하고 음대 연주 봉사 동아리 ‘이화첼리’, ‘이화다움’ 부원들이 참여하는 본 공연은 3월21일부터 매일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공연은 계속될 예정이다.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를 기획한 배일환 교수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를 기획한 배일환 교수 김영원 사진기자

“제가 할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어서 음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배 교수는 음악회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콘서트홀이 러시아군에 의해 파괴됐다는 소식을 들은 배 교수는 음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다. ‘이화첼리’와 ‘이화다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상하(관현·19)씨는 “평소에도 교수님과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눈다”며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교수님의 제안으로 음악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들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평범한 음악회를 열기보다는 진정성을 담아 종전까지 매일 음악회를 열어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음악회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배 교수가 직접 결정했다. 그는 러시아가 현 상황의 ‘가해자’라고 생각해 러시아대사관 근처에서 음악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그는 “가해자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말로만 전하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적다”며 “그러나 음악으로 꾸준히 전하면 잘못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할 것이라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사관 관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음악회를 보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길 바랐다. 이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점심시간인 오후12시30분부터 약 30분간 연주를 하기로 계획했다.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김영원 사진기자

기자가 직접 음악회를 찾은 3월25일, 배 교수는 첫 곡의 연주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이 음악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더 위로를 받고,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며 “이게 우리의 희망이고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정성이 담긴 꾸준한 ‘쇼’이며 막이 내려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배 교수가 말을 마치자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말처럼 이 음악회의 핵심은 ‘진정성’과 ‘꾸준함’이다. 무엇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임씨는 “처음부터 꾸준함과 진심이 담긴 음악회를 하자고 기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고자 이렇게 매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다영(관현·19)씨는 “평소에도 다른 연주 봉사활동을 자주 해 어느 정도의 ◆레퍼토리가 준비돼 있는 것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3월25일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참여자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3월25일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참여자들 김영원 사진기자

연주곡은 매일 다르다. 3월25일에는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에 이어 양희은의 ‘아침이슬’,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편곡한 곡 등 총 일곱 곡이 첼로 사중주로 연주됐다. 배 교수는 선곡 배경에 대해 “테마와 잘 어울리는지와 대중적인지가 중요한 선곡 기준이며 그날 공연에서 하는 멘트와도 잘 어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상황에 따라 새로운 곡을 연습해 선보이기도 한다. 3월20일 폴란드에서 열린 자선 음악회에서 한 우크라이나 소녀가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른 일이 있었다. 이것이 이슈가 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자 배 교수와 학생들은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습해 새롭게 연주 목록에 추가했다. 인터뷰 당일 연주된 국가를 듣고 슬프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관객도 있었다.

 

이날 진행된 연주회는 많은 행인의 발길을 잡았다. 관객들은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했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이날 진행된 연주회는 많은 행인의 발길을 잡았다. 관객들은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했다. 김영원 사진기자

배 교수의 팀은 국악과 교수 및 학생들과의 합주도 진행한 바 있다. 3월22일에는 본교 강효주 교수(한국음악과)가 참여한 국악 공연이 열렸고, 24일엔 해금과 첼로 합주도 진행됐다. 배 교수는 “‘뷰티플마인드채리티’(Beautiful Mind Charity)라는 문화 봉사단체에서 국악과 교수님들과 함께 자주 공연을 해온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음악회가 진행되는 정동길의 모습과 국악이 잘 어우러진다는 것, 국악을 통해 ‘우리 식’의 표현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음악회는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배 교수는 “매우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예원학교의 선생님들도 합주 의사를 밝혀왔다”며 “실제로 4월 초 함께 연주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음악회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실제 음악회 현장에서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한 독일 국적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국가를 듣자마자 우크라이나의 고통받는 모든 아이들과 피난민들이 떠올랐고, 친구들이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는 본인의 트위터(Twitter) 계정에 음악회 링크를 올리자 이를 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매우 고마워했다고도 덧붙였다.

 

3월25일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참여자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3월25일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 참여자 김영원 사진기자

“단 한 명이라도 더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음악회를 통해 무엇을 이뤄내고 싶냐는 질문에 임씨는 이렇게 답했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 연주를 이어나가면 먼 우크라이나에도 진심과 위로가 닿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우리끼리 시작한 거지만, 점점 더 널리 알려져서 우리의 의도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배 교수는 ‘Real meaning of charity is expecting nothing in return’이라는 문구를 소개하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시작했기에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배 교수는 이들이 일으킨 작은 불씨가 변화를 일으켰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의 음악으로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고 한 사람이라도 변화하길 바랍니다.”

 

◆레퍼토리: 음악가나 극단 등이 무대 위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준비한 곡목이나 연극 제목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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