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는 없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제 3자의 목소리를 이용해서건 제목을 통해서건,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기사에 쏟아냈다. 그렇게 일 년을 달려왔다.

#수습기자
이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사명감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소위 ‘기자정신’이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바이라인이 신문에 나오는 게 좋았고, 내 기사의 길이가 다른 수습기자들 기사보다 긴 게 기분 좋았다. 고발기사를 쓸 땐 만약에 있을 항의에 대비해 적당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제목도 적당히, 취재도 혼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모두 ‘적당한’ 비판이 가미된 ‘적당한’ 기사를 썼다.

#정기자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매주 두세 개의 기사에 치이고 금요일마다 꼬박꼬박 밤을 새며 몸은 지쳐간다. 그러나 이상한 건 취재가 힘들수록 생소하고 굳건한 어떤 감정이-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기자정신’이라는-‘적당히’란 불치병으로 흐물흐물해진 내 맘속에 퍼져 흐른다는 것. 정기자 시절 내내 난 수습시절의 고질병이었던 ‘적당히’와 끝없이 싸웠다. 결과는 승리! 취재도 최선을 다했고 기사 한문장 한문장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제 한 번의 제작만이 남았다. 이번 제작이 끝나면 난 이젠 차장이 되고 더 이상 내 바이라인이 나가는 기사를 신문에서 볼 수 없다. 못다한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가보다. 내 안의 ‘기자정신’이란 놈이 소리를 지른다. 난 아직 이화를 향해 고함칠 말들이 너무나 많다고.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