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의 어머니’가 이화를 찾던 날, 축축한 가을비가 교정을 흠뻑 적셨다. 사실 ‘제인 구달’이란 이름은 내게 낯설었다. ‘동물의 왕국’에 등장해 침팬지와 대화를 나누던 가녀린 여성의 모습이 더 익숙했으니까. 작은 몸집으로 탄자니아 국립공원을 활기차게 누비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그 때의 금발은 백발로 변했지만, 용감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모습은 여전한 것 같다.

강연 내내 구달 박사의 곁을 지켜준 그녀의 분신 ‘Mr.H’. 이 침팬지 인형은 한 시각장애인 후원자가 자신이 발견한 희망이 온 세계에 퍼지길 바란다며 구달 박사에게 선물한 것이라 한다. 바나나를 들고 해맑게 웃음짓고 있는 ‘Mr.H’는 제인 구달 박사가 가는 곳마다 함께하는 귀여운 동반자다. 이번 방한을 통해 ‘Mr.H’는 ‘자연과 친구가 되자’는 제인 구달의 메시지를 우리나라에도 전해줄 것이다.

강연과 싸인회가 끝난 뒤 조금은 한적해진 대강당 한 켠에, 노란 체육복을 입은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에게 다가가 “제인 구달 할머니를 알고 있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대답 대신 구달 박사의 이야기가 담긴 손때 묻은 동화책을 들어보였다. 이윽고 아이는 동화책 표지를 넘겨 나에게 무언가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Follow your dream -Jane Goodall’. 제인 구달이 아이의 책에 남겨 준 소중한 싸인은 마치 요술 할머니가 걸어준 신기한 주문처럼 느껴졌다. 동화책을 꼭 감싸안는 아이의 포근한 웃음 속에 강연 내내 제인 구달이 강조하던 ‘우리의 희망’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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