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현대영화의 한 장을 목격하고 때로는 창조하기도 하면서 시대를 관통해온 현대영화의 거장이다. 마르크스를 숭배하던 이탈리아의 공산당원 청년 베르톨루치는 프로이트를 읽고 성 정치학에 매달리는 중견감독의 길로 나아갔으며,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중국, 모로코, 네팔 등을 배경으로 동양의 얘기를 찍었다. 60, 70년대의 청년 베르톨루치가 정치와 성과 사회를 얘기했다면 90년대의 베르톨루치는 할리우드식의 ‘매혹’을 이야기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베르톨루치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인다. 영화를 찍기 시작한지 40년이 넘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흥미로운 현재진행형이다.

성과 정치, 프로이트의 이름으로
 
  어린 시절, 베르톨루치는 시에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냈지만 대시인이었던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는 무력감에서 영화감독을 택했다. 24세에 <혁명전야>를 발표하면서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 뉴 시네마의 기수로 떠오른다. 누벨바그, 특히 고다르에게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한 <혁명전야>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삶과 자유로운 저항사이의 대립, 그리고 프로이트식 해석이 녹아있는 성이라는 앞으로의 영화에서 계속되는 주제가 시작된다.
 고다르를 따르고자 한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나, 68‘혁명의 실패는 그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70년에 발표한 <순응자>에서 존경해 마지않던 고다르식의 영화를 정면으로 부정했고, <거미의 계략>의 진실과 역사의 어지러운 미로 사이로 보이는 것은 의문과 회의에 찬 베르톨루치 자신이다.   

' 성표현에 있어서는 혁명적이었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혁명전야>, <순응자>, <거미의 계략>과 마찬가지로 혁명 가능성의 좌절과 순응이라는 패배적인 결말에 다다른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68혁명 세대에 대한 무력한 자화상이며 좌절로 끝난 60년대와의 작별에 다름 아니다. <1900>은 공산주의에 바치는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찬가였다. 이후 베르톨루치는 <어리석은 남자의 비극>을 끝으로 이탈리아를 떠난다. 네오리얼리즘, 이탈리아 뉴시네마 등으로 세계 영화사조의 중심에 섰고, 존경받는 거장들을 배출했던 이탈리아 영화계는 70년대 들어 할리우드 자본과 TV에 잠식당해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런 국내 영화사정에 치명타를 날리고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자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간 베르톨루치.
그는 자신의 영화 속 ‘순응자’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만다.  
매혹의 여정 또는 ‘어리석은 남자의 비극’

  베르톨루치는 “80년대까지의 부패와 냉소주의가 나를 이탈리아에서 내몰았다”라고 스스로를 변명하며 비현대적인 공간, 무구한 장소를 찾아 동양으로 떠났다. <마지막 황제>로 그는 아카데미를 휩쓸고 흥행에 성공했지만 최고의 자리에 선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내리막길이었다. <마지막 사랑>과 <리틀 부다>에서 낯선 동양에의 매혹을 표현했지만 이국취향의 속물 스펙터클이라는 거센 비판이 있었다.  “영화는 소설이나 연극보다도 시나 음악에 가까울 것이다”라는 베르톨루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화 속 회화적, 시적, 음악적 요소들을 중요시 했고, 그것을 탁월하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요소들이 주제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빛났음을 망각한 것일까. 할리우드 자본으로 빚어낸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집착과 스펙터클에 대한 강박관념 사이에 남은 것은 장중하고도 화려한 스타일, 단지 그 뿐이었다.

‘신중한 귀향’
 할리우드에서 ‘오리엔탈리즘 3부작’이라는 냉소 섞인 꼬리표가 붙은 영화를 연달아 만든 베르톨루치는 작가로서 회의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예리한 시인, 진보적인 좌파 시네아스트이며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라는 찬사는 한 때의 수식어로 보였고, 이제부터 그가 나아갈 길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이 때, 베르톨루치는 '신중한 귀향'이라고 짧게 언급하며 15년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다시 이탈리아로 왔지만 지난날처럼 정치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까. <스틸링 뷰티>와 <하나의 선택>은 스펙터클이 배제된 작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한 세기가 바뀌어서야 비로소 베르톨루치는 자신이 도망친 시간에 대한 답변인 듯한 <몽상가들>을 내 놓는다. 그는 지나가버린 68혁명에 관한 기억이 아닌 정치적 혁명과 성의 혁명이 끓어올랐던 68혁명, 그 안으로 들어간다. 비록 베르톨루치가 먼 곳에서 방황하는 동안 성과 정치의 결합은 이제 진부하게까지 보이게 되었지만 도망치려고 했던 상처이자 강박관념인 68년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어 보인다. 
 이제 베르톨루치는 60을 훌쩍 넘은 감독이지만 아직도 뭔가 더 남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한다. 아마도 표현적인 미장센, 리드미컬한 편집, 매끄러운 카메라 움직임과 이야기구조,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등 복합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에 혁명과 순응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결합시킬 수 있는 거장으로서의 그의 능력이 여전한지를 더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40~  )

▷1962 <냉혹한 학살자>  ▷1964 <혁명전야>  ▷1965 <페트롤리오의 삶>  ▷1966 <운하> (단편 기록영화)  ▷1967 <아고니아>(단편)  ▷1968 <파트너>  ▷1970 <거미의 계략>, <순응자>  ▷1971 <건강과 질병 혹은 가난한 자들은 먼저 죽는다> (기록영화) ▷1972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76 <1900>  ▷1979 <루나>  ▷1981 <어리석은 사나이의 비극> ▷1987 <마지막 황제> ▷1990 <마지막 사랑> ▷1994 <리틀 부다> ▷1996 <스틸링 뷰티> ▷1998 <하나의 선택> ▷2002 <몽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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