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수) 오후3시30분 한국여성연구원 세미나실에서 ‘윤석남·박영숙의 작품을 통해서 본 여성경험과 여성주의 표현의 관계’ 세미나가 열렸다. 설칟드로잉 작가 윤석남과 사진작가 박영숙은 여성들의 경험과 여성이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주목,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단독 발표자로 나선 김영옥 교수(여성학 전공)는 이들처럼 여성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여성 고유의 경험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 속에는 경험이 이뤄졌던 ‘시간’과 다른 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는 과정인 ‘이야기’가 포함된다. 김영옥 교수는 여성의 삶이 언어로 표현, 이야기로 전달되는 현장에서 지금까지 평가절하된 가치를 되찾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그는 사진작가 박영숙의 ‘오사카 프로젝트’를 들었다. 작가 박영숙은 일본의 한국인 거리에서 만난 재일교포 여성들을 인터뷰한 뒤 그들을 찍어 사진을 남겼다. 여기서 한국인 거리는 이야기의 현장이며, 사진을 찍는 과정은 재일교포 여성들이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경험을 표현한 작품의 또 다른 예로 윤석남의 ‘핑크룸 연작’이 꼽혔다. 바닥에 구슬을 깔고 온통 분홍색으로 꾸며 실제 크기로 설치한 방에 의자와 갈고리로 의미를 줬다는 것이 김영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채 전통에 묶여 남성이 다가오길 기다려야 했던 여성의 이미지를 의자로 표현했다”며 “이 의자는 아래로부터 솟구쳐 올라온 갈고리에 뚫리게 되는데, 이는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제도와 문물에 상처받았던 여성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여성들은 결국 이 상처를 극복해냈고 오늘날에는 상처가 아니라 욕망·언어 등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남의 또 다른 작품 ‘마님의 안방’은 드로잉과 설치작품, 두 버전이 있다. 드로잉에 작가는 금을 긋고 조그마한 글씨를 써넣었다. 이에 대해 김영옥 교수는 “평면 회화에 구획을 그어 여성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 재질로 만든 설치작품 ‘마님의 안방’은 치마 밖으로 길게 뻗은 팔이 인상적이다. 그는 “늘어난 팔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아우르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옥 교수는 무수한 여성작가 중에서 윤석남과 박영숙을 꼽은 이유로 이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보통 여성작가들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율적인 창작행위에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작가 윤석남·박영숙은 여성 스스로가 상상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표출할 수 있는 대안의 공간으로 제시되고 있는 ‘제 3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민주(32세)씨는 “한국의 여성주의를 표방했던 예술가들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다”며 “자기 성찰을 작품소재로 쓴 것이 여성주의적 접근이었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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