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여, 같지만 다른 언어

호텔 파티에 참석한 커플에게 지배인이 다가와 특별 선물로 케이크를 준비했으니 지금 자르겠냐고 물었다.
남자: 오늘은 음식을 많이 먹었으니 케이크는 내일 자르도록 하죠.
여자: 안돼요. 파티는 오늘이니 지금 잘라야 해요.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남성과 여성은 대화양식이 다르다. 첫째, 같은 어휘를 사용해도 그것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파티에 나온 디저트를 보고 남자는 케이크가 음식이라는 메시지에 초점을 두는 반면, 여자는 특별한 날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여자가 감정을 전달하는 말하기를 한다면 남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말하기에 치중한다. 즉, 여자는 파티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남자는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르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이같은 여성과 남성의 화법 차이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성균관대 박기순 교수(신문방송 전공)는 “성에 따른 대화 양상의 차이는 여성학부터 사회학·심리학·커뮤니케이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학계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없나를 넘어서 그 차이의 원인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남녀 대화양식의 차이가 생물학적 이유라는 의견과 문화적인 차이라는 두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먼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작가이자 심리학자인 존 그레이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생물학적 근원에서 찾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남자와 여자를 금성, 화성에서 온 서로 다른 행성인에 비유한다. 그들이 온 행성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욕구나 가치관이 다른 화성인과 금성인이 상대방도 자기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존 그레이는 의사소통에서 생기는 문제 역시 생물학적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예를 들어, “무슨 일 있어요?”라는 여자의 물음에 남자가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면 여자는 남자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대화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남자들에게 “괜찮아요”라는 표현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이에 반해 「남자의 말, 여자의 말」·「말 잘하는 남자? 말 통하는 남자?」 등을 저술한 사회언어학자 데보라 테넌은 생물학적인 차이보다는 문화적인 차이가 크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저술한 책들은 대게 ‘남녀 간의 대화는 다른 문화 사이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이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문화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과 생활패턴, 습관을 뜻하는 말이다. 사회가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하는 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는 양육하는 방법의 차이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남녀의 대화방식 차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존 그레이의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데보라 테넌의 문화적 차이가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3년 봄 한국사회언어학회에서는 ‘언어와 젠더’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여기서 학자들은 젠더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며, 사회구조가 녹아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또한 청주대학교 이두원 교수(언론정보학 전공)는 부부 간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면 남성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부부 간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대한 분석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선천적인 남녀의 차이도 무시할 순 없지만 문화에 의해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길러지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문화 속에서는 권위있는 남성상과 순종적인 여성상을 기대했기 때문에 대화양상에 차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일부 급진적인 학자들은 문화가 남녀 대화의 차이에 영향을 줬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넘어 성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간 차이만을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인과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의 공동저자 김평희씨는 독일여자 직원과 함께 일을 한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외국어에 능통하고 아시아 문화를 잘 알기 때문에 편했다”며 “성별이나 문화적 토대가 달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바탕만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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