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에서 초콜렛 하나를 사더라도 나는 너댓가지 초콜렛을 늘어놓고, 그 초콜렛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 얼마나 당도가 높은지 꼼꼼히 따져보곤 한다. 이는 내가 먹을 제품에 대한 스스로의 검열로, 이 과정에서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 총학생회(총학) 선거가 한창인 지금, 나는 여기에서도 초콜렛과 같이 따져보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얼마 전 서울대에는 5개 선거본부(선본)가 총학선거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있자니 달랑 두 개의 초콜렛을 앞에 두고 어떤 것이 더 맛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나는 선거에 임할 때 가장 먼저 해당 선본의 성향을 판단한다. 여기서 성향이란 운동권·비운동권으로 양분되는 개념이 아닌, 다양하고 특색있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가치관으로 전제하고 싶다. 그 후 특정 선본이 내 성향과 맞다고 판단되면 해당 선본이 내세운 공약을 세세히 짚어본다. 그러나 현 이화의 선거는 내게 선본을 평갇판단하는 과정의 설렘을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선거에 출마하는 선본의 성향이 비슷하고 그나마 등록하는 선본의 절대적인 수도 적어 성향·공약 등을 분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발적으로 후보에 등록하는 이화인의 참여 부족으로 가속화되는 추세다. 이를 막을 수 있는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학생 개개인이 선본을 선택하는 유권자임과 동시에 후보 당사자가 돼보는 것이다. 왜 나는 선본을 다가서기 어려운 벽처럼 느꼈던 것일까.

나는 이화 안에 다양한 정책을 내건 각양각색의 선본들이 넘쳐 흘렀으면 한다. 도서관 개방을 지지하는 선본·이대 앞 상업화를 반대하는 선본·휴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선본 등. 이런 소단위 선본들은 거대담론을 내세울 필요도 없고 모든 이화인의 요구를 수렴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다만 총학선거가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이제 초콜렛 만드는 방법을 배워볼까 한다. 내 입맛에 맞는 초콜렛을 내 손으로 직접만드는 즐거움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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