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199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을 당시, 인터넷에서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한 지식인이 있었다. 대중들에게는 ‘마르코스’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본명은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무장단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부사령관이란 직함은 마르코스를 멕시코의 ‘오사마 빈 라덴’으로 불리게 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멕시코 원주민들에 대한 토지 분배와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투쟁정신을 높이 평가받아 멕시코의 ‘체 게바라’라는 명성도 얻었다.

투명성 논란이 많았던 94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 기간에,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멕시코시티의 한 영화관과 연결해 관객들에게 선거 결과를 비판하는 음성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멕시코 정부와 친미 세력은 그가 속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외국으로부터 고립시키려 했지만,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성명서를 발표하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정부의 권력에 맞서 일반 대중들과 의사를 공유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마르코스는 운동을 시작한 지 10년 째인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미국과 신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사파티스타 공식 홈페이지(www.ezln.org)는 글을 등록하는 일반적인 게시판 형태와는 달리, 사진을 중심으로 ‘왼쪽사진은 가난한 원주민…, 오른쪽 사진은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 중에 한 곳’등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마르코스는 늘 검정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도 소문만 무성할 뿐 사실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그를 밀착 취재해 온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의 기자 마이테 리코는 최근 「21세기 게릴라의 전설, 마르코스」란 책을 통해 ‘마르코스는 언론사에 따라 인터뷰를 해주지 않을 정도로 노출에 신중하며, 인터넷에 올린 성명서 내용 또한 직접 올린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비록 인터넷의 거대한 구조 안에 묻히길 자처했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의사를 밝힌 마르코스. 인터넷을 기반으로 전 세계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을 결집시킨 그는 독자적인 ‘전자행동주의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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