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위주의 서구 전자행동주의, 우리나라는 네티즌도 함께 참여해

올해 1월 미국에서는 여성학자 메데아 벤자민의 ‘최악의 한 해 덕에 좋았던 열 가지’란 글이 주목을 받았다. 벤자민은 그 글에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전쟁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인터넷에서 ‘전자행동주의(e-activism)’로 집결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자행동주의란 인터넷을 뜻하는‘explorer’와 행동주의를 뜻하는 ‘activism’의 합성어로, 인터넷이 직접 정치를 실현하는 공간이자 지식인들의 활발한 공론장임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자행동주의는 주로 지식인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로 자유언론재단(EFF, www.eff..org)의‘푸른 리본 운동’을 들 수 있다. 푸른 리본 운동은 96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통신품위법안이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반대해, 자유언론재단의 설립자 존 바를로가 인터넷 회원들을 모아 미국 정부 사이트를 해킹하고 항의글을 연속적으로 올린 사건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 통신품위법안은 결국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인터넷 해킹을 극단적인 투쟁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던 급진적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들은 온라인에서 보다 쉽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해커(hacker)적 성격 때문에 전자행동주의는 ‘핵티비즘(hacktivism)’이라 불리기도 한다.

핵티비즘의 흐름을 타고 미국에서는 90년대 말부터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이 인터넷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그 활동이 최고조에 달했다. 메데아 벤자민의 글이 발표된 알터넷(www.alternet.org) 외에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들의 비화를 소개하는 탐디스패치 닷컴(www.tomdispatch.com), 보수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사건의 이면을 제공하는 트루쓰 아웃(www.truthout.org) 등이 미국 전자행동주의의 중심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전자행동주의의 양상은 미국과 다르게 나타난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민경배 소장은 “전자행동주의는 서구 중심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며 “인터넷이 활성화된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지식인과 네티즌들이 함께 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지식인 중심의 전자행동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 대선 때 만들어진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회창을 사랑하는 사람들(창사랑) 등은 계층과 나이의 경계를 넘어 좋아하는 정치인이 같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다. 창사랑 광진구 대표 김준교(23·서울시 광진구)씨는 “지금까지도 창사랑 식구들과 함께 이회창씨를 매년 만난다”며 “온라인을 통해 내가 지지하는 정치가에게 정책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정치인과 대중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전자행동주의는 정치 패러디·온라인 토론방·게시판 등에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 미디어몹(www.mediamob.co.kr)·미디어다음 토론방 등이 그 중심이다. 라이브이즈닷컴에서 정치패러디를 연재하고 있는 첫비씨는 “온라인에서는 익명성 덕분에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고, 피드백 내용도 생동감이 있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렇게 한국형 전자행동주의는 사이버 상의 토론 문화 발달과 더불어 온라인 논객을 등장하게 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나 미학평론가 진중권씨가 대표적이다. 특히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한 진중권씨는 인터넷 매체가 낳은 대표적인 스타논객이다. 그는 ‘안티조선’에서 ‘안티오마이뉴스’로, 한겨레 기고 거부와 민주노동당 탈당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행적과 논쟁사를 기록했다.

전자행동주의는 인터넷의 개방성을 이용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부담없이 표현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활발한 현실에 비해 전자행동주의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우리 학교 차남희 교수(정치외교학 전공)는 “전자행동주의가 최근 들어 활발해진 현상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만한 연구가 없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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