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대학생 ‘정남’씨를 만나다

“이대학보사 기자님, 반갑습니다”. 10일(수) 오후6시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 검은색 옷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연세대 정남(법학·4)씨가 조금은 어색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97년 북한에서 철로 보수공으로 근무하다 어머니와 함께 탈북한 그는 올해로 한국 생활 7년 차다. 이제는 북한에서 왔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남한 사회에 익숙한 그지만 말투에서는 여전히 북한의 독특한 억양이 묻어난다.

"국경 넘는 순간부터 신변의 위협 느낍니다"

정남씨는 먼저 북한을 탈출한 이후 남한에 입국하기까지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가족은 러시아 유학 중이던 형의 월남으로 인해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됐다. 정치적인 이념의 갈등을 느끼며 탈북을 결심한 그는 “신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 탈북 사실을 보도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탈북자에게 있어서 중국 공안보다 두려운 것이 신변 노출인데 언론의 부주의로 인해 탈북자들은 북송의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중국에 있는 각 국 대사관에 진입을 시도할 때마다 만약을 대비해 독약이나 흉기를 소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북한 정부가 주민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는 탈북했다가 다시 월북한 사람들에게 ‘탈북방지강연’을 벌이도록 하고,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치는 등 경계 강화에 힘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 간에는 탈북자를 넘겨주면 그 대가로 나무를 제공하는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국에 들어와도 탈북자 위한 정책은 미비하죠"

탈북자들은 정부기관인 ‘대성공사’와 사회적응훈련 기관인 ‘하나원’을 거쳐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단순히 직업·기술 습득 차원에 머물러 실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 그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성공사’는 탈북자들에게 신원조회를 명목으로 구타를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퇴소한 이후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그의 말에서 한국 정부의 미흡한 탈북자 정책에 대한 씁쓸함이 느껴졌다.

정남씨는 대학에 다니기 전까지 몇 년간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착금으로 받은 2천800만원 중 임대 아파트 보증금과 기본적인 생활 용품을 갖추는데만 2천만원이 들었다. 결국 남은 돈은 800만원에 불과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하나원’을 퇴소한 후 보름만에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졸 출신인 그의 학력은 고졸까지만 인정됐고, 북한에서 취득한 자격증도 남한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받은 학위·자격증과는 달리 북한의 학위·자격증은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월남한 이후에도 북한에서의 행적은 탈북자들의 꼬리표로 남는다. 지난 달 통일부가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입국한 탈북자 4080명 가운데 10.7%가 북한이나 중국에 체류할 당시 범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남씨는 이와 같은 정부의 발표가 탈북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대부분 생계형 절도다. 오늘 저녁 먹을 쌀이 있고 태울 땔감만 있어도 범죄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탈북자들의 처지는 이해하지 않은 채 ‘탈북자=범죄자’라고 인식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통일 한반도 이끄는 선봉자 되고 싶어요"

남북한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그는 “단지 한 민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U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 세계는 점차 국경없는 나라로 변화하고 있다”며 남북한 또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국토 면적의 70%가 산이기 때문에 지하자원이 많고 값싼 인력이 풍부하다”며 “북한의 자원·인력과 남한의 기술이 합쳐지면 우리는 태평양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탈북 대학생들과 한국 대학생들이 남북문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통일한마당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정남씨. 그는 현재 전공인 법학 외에도 신문방송학·영상예술학을 복수 전공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업에 열중하는 등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달리고 있다. “장차 통일의 선봉자, 탈북자의 선구자가 돼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살아간다”는 그에게서 굳세고 당찬 포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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