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고 폴더에 저장할 때, 난 그 기사에 특별한 이름을 지어준다. (물론 이 이름이 실제 기사 제목으로 가는 경우는 없다.) 너무 힘들었던 멀티플렉스 기사에는 ‘토할 것 같은 멀티플렉스’, 내가 좋아하는 남태정 프로듀서의 멘트가 담긴 라운지 음악 기사에는 ‘남피디와의 통화 라운지’ 등 취재나 초고 쓰는 과정의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오는 이름들이다.
이번 임순례 감독님과의 좌담 기사에도 나만의 느낌을 승화시켜 이름을 지어주었다. ‘소프트 포커스의 느낌’.

임순례 감독님을 만나기 전, 여느 때처럼 감독님과 관련된 정보를 몽땅 수집하고 밑줄을 그어가며 예습을 했다. 예습에는 감독님의 작품 ‘그녀의 무게(여섯개의 시선 중)’ 관람도 포함돼 있었다. ‘그녀의 무게’의 에필로그에 담긴 검은 점퍼를 입고 수많은 스텝 속에서 지휘하는 감독님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는 감독의 모습 그대로였다.

국제교육관 7층에서 처음 뵌 임순례 감독님은 많은 인터뷰 사진과 동영상에서 봐왔던 모습 그대로였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수줍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감독님의 수수한 옷차림과 순박한 외모에서 포근함이 느껴졌다. 학생들의 질문에 이어진 감독님의 답변에서는 세상의 소외된 부분을 바라보는 감독님의 시각과 그걸 영화에 표현해내려는 열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 프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임순례 감독님.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밝은 빛이 되어 감독님을 예쁘게 보이도록 했다. 마치 카메라 기법 중 하나인 ‘소프트 포커스’로 찍은 장면처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얼굴이 예쁜 사람도 있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오늘 나는 그 많은 사람 중에 사람이 예쁜, ‘소프트 포커스’의 느낌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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