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묘·볼피드·보리의 이야기

연애 안 할 권리가 없는 사회, 이성애 안 할 권리가 없는 사회

광묘 :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하는 광묘야. 요즘 취업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취업한 선배님들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최종 면접에서 ‘남자친구 있는가'란 질문이 나온다고 해. 이런 질문이 나왔을 때 모범답안은? ‘있었지만 헤어졌어요’

‘있었다’고 해야하는 이유는 그래야 정상적인 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헤어졌다’고 해야하는 이유는 지금 남친이 있으면 결혼할까봐 떨어뜨린다는 거야. 난 기업의 부조리함을 떠나서 ‘연애를 무조건 해봐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 거부감이 들어.

친목모임에 나가면 진실게임을 할 때 꼭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봐. ‘없다’고 말했을 때 뭔가 하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그 눈빛들 때문에 난 가상의 A군을 만들곤 하지.ㅋㅋ 난 한번도 연애를 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많고 아는 사람도 많은 편이야. 성격도 좋다고. 단지 굳이 연애해서 감정싸움 하는 과정이 싫어 ‘연애 안하길’ 선택했을 뿐인데, 항상 비정상적 성격의 소유자로 취급된단 말이지.

볼피드 : 같은 학년 볼피드야. ‘연애를 조장하는 것’이 단지 사랑이 소중하고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그건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야. 커플을 겨냥한 이벤트 같은 거 많잖아. 커플이 많아야 잘 팔리는 물건도 많고. 한마디로 커플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다지’라고나 할까.

또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보는 측면이 있잖아. 근데 결혼도 ‘필요’에 의한 것이라구.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사회가 유지되니까. 결혼이 사회체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는 인식 하에서는 연애라는 절차가 요구될 수밖에. 이런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연애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지.

그리고 아까 광묘 선배가 말한 예처럼, ‘남자친구 있냐?’라고 묻는 것은 남자친구가 없는 사람에게도 박탈감을 주지만 사랑의 상대를 ‘남성’으로 규정짓는다는 점에 있어서도 문제야. 사람마다 사귈 수 있는 대상이 다른데 ‘남성’으로 규정지어 묻는 문화 자체가 억압적이란 거지.

기자 : 맞아. 강호동이 진행하는 그 프로그램 있지? 야심만만? 그런 데에서도 남녀관계를 이성애로만 규정짓지. 남자는 여자에게, 또 여자는 남자에게 이런 상황에서 어떠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느니.

보리 : 나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 하고 있는 보리야. 야심만만에서도 동성애 코드가 드러나긴 해. 하지만 동성애가 희화화의 대상이며 이슈 메이커로 작용한다는 게 문제지. 저번 주에 보니까 비를 사이에 두고 탁재훈과 이휘재가 싸우던걸? 실제 여부는 중요치 않고 ‘한번 웃겨보자’는 거겠지. 아마 남자들 사이에서는 장난으로 이런 농담을 많이 하나보지?

볼피드 :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동성애’에 대해 많이 알고는 있어. 하지만 부작용이 커서 문제지. 예를 들어 머리 짧고 미청년 스타일인 내 친구가 취업을 했는데 직장에서 ‘너 혹시 레즈비언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는 거야.

광묘 : 좋아하는 남자가 생겨서 어떻게 해야할 지 알던 언니에게 팁을 얻으려는데, 언니가 놀라는 거 있지. 나는 남자를 안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할 것 같다는 거야. 행동방식이 전통적이지 않고 여성학을 공부하면 다들 레즈비언으로 보는 편협함에 놀랐지. 굉장히 위협적이고 무섭게 느껴졌어.

 

사랑의 판타지와 결혼

볼피드 : 사랑은 국경을 넘을 수도 있고, 누구나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등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많지만, 이는 이성에 대해서만으로 제한돼 있어. 뿐만 아니라 사랑은 거의 같은 계급 내에서 일어나지. 여성이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결혼을 이용한다는 얘기도 많지만 대체적으로는 같은 계급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게 현실이야. 기업들끼리의 결혼도 많고, 대학생들만 봐도 그들이 학교 앞 닭꼬치 파는 아저씨와 결혼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잖아. 하물며 우리 학교 학생이 지방대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낯선 일인 판에. 사실 사랑의 판타지는 없어. 우리가 극복하고 있는 건 거의 없는 걸.

기자 : 실제 사랑에 판타지가 발휘된다 해도 ‘파리의 연인’에서 처럼 남자가 더 높은 경제수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광묘 : 역전되는 상황이 있다면 남자들이 그 열등감을 이기지 못할 걸.

볼피드 : 1,2학년 때는 ‘능력있는 남자’를 찾는 사람들을 다들 한심해 하지. 하지만 취업하러 나갔다가 지쳐 생존의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능력있는 여성’이 되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차라리 결혼이나 할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여성에게 취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보리 :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엄청난 편견과 오해들 때문에도 결혼을 피하긴 힘들지. 확실히 결혼이 여자에게 갖다주는 엄청난 자원이 있어. 집안, 경제력, 지능, 외모 부족할 게 없으면서 미혼인 여자 교수들이 기혼인 교수들보다 딸리는 게 뭔지 알아? 바로 인맥이야. 여성들은 사회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인맥을 잡기 힘들고, 아버지의 빽 조차도 여성에겐 연결이 잘 안되지. 사회에서는 인맥도 자원인데 자원동원력이 크게 떨어지니, 여러모로 피해를 보지. 능력있는 여성도 이런 데 일반적인 여성은 어떻겠어. 결혼 안한 여성의 삶은 말 그대로 ‘투쟁’이야.

볼피드 : 보리의 말대로 여성과 같은 마이너리티에게 사회는 위협적이야. 내가 아는 연극배우 언니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생계의 위협’을 느껴 결혼을 선택했어. 선배 언니들이 말하길 결혼 후 자신의 모습은 ‘모난 돌이 맨질맨질 달아가는 과정’과 같다고 해.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언니였지만 결혼 후 거의 포기한 상태야.
그래도 결혼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여성이 혼자서 돈 벌고 살기가 그만큼 벅차기 때문이야. 결혼을 하면 집이 생기잖아. 독립하는 것 가지고 부모님이 경제적 원조를 해주거나 집을 사주진 않으니까. 자본이 두 개가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도 생기고 부조금도 들어오지. 결혼이 인간답게 살고 독립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되는거야.

광묘 : 부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부모님들 보면 맨날 부조하느라 바쁘지. 부조는 ‘전국민의 결혼계’야.

볼피드 : 정년퇴직을 앞둔 부모가 어떻게 해서든 빨리 딸들을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도 봤어. 결혼은 정말 경제적 작업인 것 같아. 국가에서 결혼한 사람에게만 주는 세금면제, 의료보험 등의 혜택도 많잖아. 결혼은 사랑과 또 다르게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로 봐야 해.

 

‘오빠’란 호칭에 대한 불만

기자 : 요즘 연애 풍토 중에 뭐 마음에 걸리는 거 있어?

광묘 : ‘오빠’라는 호칭.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친밀도에 따라 호칭이 변하기 마련이지. 친밀감이 생긴 연상의 남자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 말을 쓸 때 불쾌한 기분이 들어.

볼피드 : 내 생각에도 호칭의 문제가 커. 난 ‘오빠’란 말이 불편해서 손윗사람인 남자한테 ‘저기요’라고 얼머무리곤 해. 저학년 때는 ‘형’이라고 불렀는데 내가 남성화되는 것 같아 그만뒀어. 사실 안 좋은 표현이 아닌데도 그 호칭을 쓰기가 싫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버린 거지.

보리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들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전략적인 측면이 있어. ‘나를 여자로 봐도 되요’라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달까.

볼피드 : 오빠란 말의 어감이 많이 변질된 것 같아. 어릴 때 친오빠한테 하던 오빠란 말과 요즘 연애 대상을 두고 쓰는 오빠란 호칭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져 분리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학교 앞에 있는 라면집 ‘그놈이라면’에서 주인한테 ‘오빠’라고 부르면 500원을 할인해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 너무 짜증나지 않아?

기자 : 맞아. 터프한 척 “‘오빠’한테 와라” “‘오빠’ 못 믿니?” 할 때의 그 ‘오빠’란 말의 느낌이란…

광묘 : 맞아. 꼭 주어가 ‘오빠’지. “‘오빠’라고 불러”, “‘오빠’가 해줄께” 등등
사실 오빠라는 말은 남자 손윗사람한테 쓰는 당연한 호칭 중의 하나잖아? 나는 차라리 그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했어. 그걸 안 써 버릇하면 특별한 사람한테 쓰는 단어로 자꾸 굳어질 것 같아. 그걸 대체할 용어가 생각나지 않는 마당에 차라리 연상의 남자라면 가리지 말고 모두 오빠라고 불러서 ‘오빠’라는 말의 뜻을 희석시키자는 거지.

볼피드 : 난 미스랑 미세스를 합쳐서 미즈라고 한 것처럼 뭔가 대체적인 호칭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적 자기결정권? 아직 멀었지~

볼피드 : 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는 풍토가 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지. 여성끼리는 자유롭게 하는 얘기를 남자랑 같이 있을 때는 할 수 없을 때가 많잖아? 성관계를 했을 경우 남성은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은 뭔가 손해봤다는 생각을 하는 걸 많이 봤어.

광묘 : 한 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이 낡은 성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여러 여성간부들과 성관계를 맺은 일이 있었지. 스스로 깨어났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뭔가 아우라가 있어 보이는 학생회장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자기의 의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그 말에 이끌린거야. 성적 자기결정권이 왜곡된거지.

기자 : 내가 본 자료에 의하면 20대 초반 여성과 남성의 첫 성경험 비율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30% 이상 웃돌아. 성적 자기결정권이 여남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겠어?

볼피드 : 그건 성매매와도 연결 될 것 같아. 남자들은 군대시절에 거의 첫 성경험을 해. 그리고 그걸 너무나 떳떳하게 얘기하지. 남성은 성매매를 통해 여러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게 용인되고 있는 상황인거야.

보리 : 여성학 교양강좌를 들으러오는 남학생들이 많아지는 추세잖아. 근데 정말 여성학을 공부하고 싶어 오는 남학생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여자와 연애를 더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거나 심지어 여자친구와의 말싸움에서 이기고 싶어 오는 남학생들이 많아. 남녀평등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얘기한다는 건 아직 무리인 것 같아.

광묘 : 그들에게 여성학 수업이란 ‘여성해방’의 문제가 아니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연애 이론들을 강의로 도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지.

볼피드 : 평등한 관계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말에 공감해. 여자친구들이 ‘나랑 사귀는 오빠는 나한테 정말 잘해줘. 친절하고 가부장적이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면 거의 이런 이유야. 지하철에서 먼저 자리에 앉게 한다던가 밥 값을 먼저 낸다거나. 그런게 평등하고 심지어 여성우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잖아?

 

연애를 하면 다 똑같아져

기자 : 사랑을 하면 변한다는 말이 있잖아. 예뻐진다는 말도 있고. 내 친구들은 애인이 생기면 화장하고 옷 입는 스타일도 변하더라. 그런데 그런 변화 속에 자신의 개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생겨.

광묘 : 외모의 변화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이전에,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거잖아. 하지만 문제는 그 모습이 획일화 돼 있다는 데 있어. 예를 들어 나는 개량한복을 비롯한 펑퍼짐한 옷을 좋아해. 내가 만약 누군가가 너무 좋아서 그 사람과 사귀게 됐다고 치자. 특히 내가 더 좋아해서 권력이 상대방에게로 기울었을 경우 난 그 쪽의 취향에 맞추게 되고 한복같은 건 못 입을 가능성이 크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은 자기만족이고 좋은데, 그게 나의 취향이 아닌 권력관계 때문이라면 정말 싫은거지.

보리 : 주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영향을 미쳐. ‘네 여자친구(남자친구) 예쁘다’라는 말을 다 듣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것에 매달리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는 것 같아. 그럴 경우,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무언가에 맞추고 싶어하게 되지. 그런 기준, 잣대를 들이대는 건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아.

볼피드 : 옛날에 연애 할 때 내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옷차림이나 외모에 신경쓰지 않았고 상대방도 그것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지. 근데 주위 사람들이 옷만 보고 ‘정말 구린 커플이다’라고 쑥덕거리더군. 외모 때문에 관계 자체가 평가절하되는 거야.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나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말야. 이런 변화는 사회적인 문제인 것 같아.

광묘 : 진정한 사랑과 연애는 일상에 녹아나는 거라고 생각해. 연애가 일상에서 벗어난 무엇, 뜬구름같은 무엇으로 여겨지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사랑은 우리의 본질일까

보리 : 연애가 정말 하고싶을 때도 있지. 주말에 어딜 놀러가고 싶은 데 혼자서는 정말 가기 싫을 때.

기자 : 사랑과 연애가 과연 본질적인 문제일까? 물론 나도 사랑에 대한 욕구는 있어. 하지만 친구들을 비롯한 여러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때가 대부분인걸. 내가 아직 덜 살아서 그런건가?

광묘 :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 누구나 두 주체가 합일을 이루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잖아. 하지만 알고보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배타적인 관계야. 고인 물이 썩듯 오래 지속될 수 없지. 사람 간의 관계는 개방적인 것이 더 바람직하고,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봐. 사람이 어떻게 한 사람만 좋아할 수 있겠어? 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집착이야. 그래서 난 양다리도 무조건 나쁘게 보진 않아. 사랑은 본질이라기보다는 코드화된 관계지. 결국 사그라들 수 밖에 없는 정열을 오래오래 활활 타는 화롯불인 것처럼 규정짓고 틀에 맞추라고 말하는 건 억압이라고 생각해.

볼피드 : 사랑은 역사적으로 다른 모양을 취해 왔어. 오늘 날처럼 사랑과 결혼이 결합된 형태는 서구로 보면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것이야. 그 전에는 낭만적 사랑이 오히려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지. 사회적 배경에 따라 사랑이 이상한 감정 형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거야. 가정이란 사회단위가 필요해지면서 결혼과 결합해 ‘사랑’이란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어. 근데 오늘날의 사랑은 또 다른 것 같아. 사랑의 형태가 한 단계 더 나아간 나라들은 이제 결혼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 동거율이 결혼률을 넘기도 하니까. 사랑의 패러다임이 역사에 따라 변하듯 어떤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보긴 힘들어. 결국 답이 없다고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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