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미국이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영웅으로 등장하는 브루스 윌리스가 멋져 보였다. 이러다 보니 요즘 상한가인 미국 시트콤에 대한 내 태도는 거의 숭배 수준이다. ‘아내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는 말처럼 무비판적이다. 매일 밤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를 보며 뉴욕 생활에 대한 부러움만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동경한 자유와 희망의 나라도 우리와 똑같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곳임을 깨닫게 한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주인공 샤롯은 남편과의 이혼 후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한 서점에 들리게 된다. 그리고 「삶의 전략」·「멋진 남자와 결혼하는 법」 등이 모여있는 자기계발서 코너로 간다. 한 권을 짚어들지만 그는 끝내 그 책을 사지 못한다. 그 이유를 보고 나도 잠이 확 달아났다.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눈물을 찔찔 짜며 책을 읽고 있는 애독자들은 모두 인생의 낙오자처럼 보였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고 돈 주고 책을 사봐야한다는 그 자체가 남들에게 ‘나는 실패자예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내 책꽂이로 눈이 간다. 시선이 닿은 곳에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앤드류 매튜스의 「자신있게 살아라」가 보인다. 모두 힘들었던 재수 시절에 봤던 책이다. 그렇다면 그 때 나도 실패자처럼 보였을까.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찾는 사람이 비단 나나 시트콤 속 샤롯만은 아닌가 보다. 이번 주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목록 10위권에 자기계발서가 두 권이나 포함돼 있고 서점에는 수 백권의 전략·방법론이 진열돼 있다. 스테디셀러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아침형 인간 신드롬도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이란 전략서에서 시작된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뭐가 궁금해서 이런 책들을 뒤적이는 것일까. 사실 자기계발서의 내용이란 뻔하다. 모두들 알고 싶어하는 성공의 법칙이란 누구나 아는 단순한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것을 열심히 즐기다 보면 인생도 잘 풀린다는 것. 이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초등학생도 아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막상 어려움에 처하면 사람은 쉬운 방법을 찾게 된다. 길을 알면서도 한 눈을 파는 것이다.

이제 나는 자기계발서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한 가지 뜻을 알 것 같다. 시련은 신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니 반갑게 받아들여 깨우치면 되는거다. 동경했던 뉴욕도 시시해졌다. 시련을 털고 일어서자. 나는 모든 방법을 깨우쳤으니 어떤 역경이 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여 성숙하련다. 마지막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한 번만 더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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