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서는 쉽고 눈에 띄게, 사회과학이론서는 소수 독자 공략해

대학생이 주 독자층인 학술서적전문출판사들은 매순간이 새로운 위기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이 학술서적의 입지를 점점 좁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누구나 대학에 가는 시대가 되면서 교양이 대중에게 널리 보급된 현상이다. 이에 따라 교양과 학술의 경계가 모호해져 학술로 정의할 수 있는 서적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학생이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얻는 경향도 문제다.

이런 부정적 상황에서도 출판사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영어·취업 관련 실용서만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책갈피’ 김희준 영업부장은 “이 시대 대학생들의 필요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로 ‘좋다·나쁘다’의 척도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경기침체와 취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면서 관심사가 지적 욕구 충족에서 개인의 성공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해문집’ 김일신 마케팅 팀장은 “학술서 읽기를 병행한다면 문제없다”고 설명했다.

출판사들의 이런 긍정적인 인식은 상황 변화를 위한 능동적인 방안 모색으로 이어진다. 인문·역사서 출판계는 기존의 서적이 어려운 용어와 글씨로 가득해 독자에 한 발 더 다가가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책이 독자를 유혹해야 하는 시대에 맞추려는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풀어 설명하는 부분을 늘리고, 사진·그림을 삽입해 시각적인 효과를 높여 총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기도 한다. 서해문집 김선정 편집부 팀장은 “이런 ‘친절’의 반작용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과학이론서의 경우 소수의 출판사가 꾸준히 책을 출판하고 있다. 특히 책갈피는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을 맑스주의 관점에서 풀어낸 저서를 펴내며 명맥을 잇고 있다. 책갈피 김희준 영업부장은 “사회과학이론서를 출판하는 출판사가 많지 않아 관심을 받는 데다 기본적인 독자군이 있어 꾸준히 팔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경영·경제·법학 전공의 대학교재전문출판사는 현재 불법 복사·제본을 막기 위해 외국의 사례를 참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 중이다. 대학생들이 교재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위해 출판사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다산출판사’ 강희일 대표는 “외국은 원본과 제본한 책 사이에 가격 차가 없고, 발췌 복사를 할 때는 복사비 이외의 비용을 저자와 출판사 쪽에 전달한다”고 전했다.

‘책 안 읽는 대학생’에 대해 책갈피 김희준 영업부장은 “전쟁·세계화·미국 대선 등 최근 이슈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이를 독서로 연결시켰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전체 정보의 일부일 뿐”이라며 “깊이 있고 체계적인 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술서는 몇 년째 공공 도서관 등의 기본적인 수요 없이는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지식산업 = 국가경쟁력’이라는 허울 뿐인 외침에서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학술서적과 출판사를 보호·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역사비평사’ 정순구 마케팅 책임자는 “공공도서관의 수, 장서 구매 예산·시스템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한편 고질적인 문제점은 계속 존재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학술서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 새삼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서해문집 김선정 편집부 팀장은 “7·80년대 소위 운동권 세대들은 시대 상황이 요구하는 과도한 필요성 때문에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했다”며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서적을 접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애초에 문화적 토양이 부족했고, 이것이 누적돼 오늘날 학술서적의 빈곤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자체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 유럽과는 대조적인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사람들이 대충 찍어도 3천부 이상은 팔렸다는 80년대와 현재를 비교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지나친 ‘뒷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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