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 투쟁에서 타협적 투쟁으로… 대기업 노조 중심 운동 탈피해야

“한국의 노동운동은 ‘왕자병’에 걸려 있다”
얼마 전 한국 노동조합(노조)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 구조를 지적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승옥 수석연구원의 글이 논란이 됐다. 지난 달 29일에는 ‘LG칼텍스정유’ 노조가 전투적인 투쟁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등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각성의 움직임이 노동계 전반에 일고 있다. 탈퇴를 감행한 ‘LG칼텍스정유’ 노조는 지난 7월 장기파업에서 대기업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1970년대 시작된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속화 됐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길오 정책본부장은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에 대한 억압과 탄압을 스스로 극복하고 노동자가 노동의 주체세력임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총파업이라는 전투적인 투쟁방식을 전개하며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힘썼다.


그러나 2000년대 사회가 민주화되고 노동조합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전투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연봉 5천만원 이상의 대기업 노조가 벌이는 파업은 노동자 계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통계조사에 따르면 영세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50.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계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노동운동의 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승옥 수석연구원은 “현재 한국 노동운동의 정신이 죽어간다”며 사랑, 양심·사회정의에 대한 각성, 성찰과 학습, 개인·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결단과 실천의 ‘전태일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오길성 부위원장은 “경제적인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만 투쟁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운동 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태일기념사업회’는 3일(수)∼15일(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민주노총·한국노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함께 전태일 34주기 기념 한마당 ‘“전태일” 흩어진 노동의 땀방울을… 모으다’ 행사를 기획했다. 5일(금) 오후2시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광택 이사, 노동사회연구소 이원보 이사장, 전국여성노조 최상림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노동운동,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하나­전태일 정신으로 비추어 본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 토론회를 열었다.


한편 전문가들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 형태를 타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2004년 현재 노조의 조합원 구성을 보면, 노동자 160만5천명 중 대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이 전체의 72.5%인 반면 영세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은 3.3%인 5만2천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노동경제 전공)는 “국민경제의 위기는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기업 노조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노동운동 간부를 양성하고, 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노동계의 총파업이 시작되는 11월.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폭력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민대중의 사회적 요구’를 위해 투쟁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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