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통증에 정신질환 동반, 심각성 인식 못해 사망까지 초래

지난 6월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구 분소 법의관인 이호 박사는 ‘컴퓨터를 하느라 장시간 앉아 있을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연세메디컬 저널’에 게재했다. 그는 지난 2002년 10월 PC방에서 4일간에 걸쳐 게임을 하다 사망한 남성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피가 굳어져 생긴 덩어리가 혈관을 타고 이동하다 폐의 동맥을 막는 ‘폐혈전색전증’이 사망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컴퓨터 사용자들의 이용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폐혈전색전증 발병과 이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2004년 상반기 정보화실태 조사’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1주일에 평균 14.6시간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0년의 10.37시간에 비해 무려 4시간 이상 늘어난 수치다. 조사에 참여한 한국인터넷진흥원 안인희 연구원은 “2000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컴퓨터 이용시간과 인터넷이용률은 꾸준히 늘어났다”며 “일상생활에서 컴퓨터 및 인터넷이 필수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주일에 컴퓨터를 10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윤현경(문정·2)씨는 “친구들과 전화비를 아끼려고 메신저를 사용하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컴퓨터 게임을 한다”며 “컴퓨터를 하고 나면 눈이 침침하고 어깨도 뻐근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눈의 피로와 두통, 어깨결림 뿐만 아니라 소외감·불면증까지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바로 ‘electronic(e)피로증후군’ 때문이다. 이는 인터넷증후군, 사이버증후군, 테크노 스트레스로 불리기도 한다. e피로증후군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도암한의원 선중선 원장은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10대·20대 학생들이 e피로증후군을 많이 호소한다”고 말했다.

e피로증후군은 육체 뿐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분당 서울대병원 정신과 정동선 교수는 “중고생이나 대학생들이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컴퓨터나 인터넷을 통해 푼다”며 “사이버공간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해 우울증, 불면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컴퓨터의 사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끊임없이 제기돼 온 불임이나 유산 문제도 e피로증후군에 포함될 수 있다. 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에 대한 임상연구가 시작됐다. 1996년 영국에서는 하루 3시간 이상 자리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고환의 온도가 높아져 정자 생성이 감소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해 네덜란드에서는 컴퓨터를 하루에 3시간 이상 사용하는 여성의 경우, 전자파의 영향으로 정상여성보다 2배 정도 유산확률이 높다는 임상실험결과가 나왔다. 김수정(컴퓨터·4)씨는 이에 대해 “팔꿈치에 통증이 심해 정형외과를 찾은 적은 있지만 컴퓨터를 오래 사용해 유산이나 불임이 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희의료원 산부인과 측은 “e피로증후군이 컴퓨터 사용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계라 아직 ‘병’이 아닌 ‘증후군’으로 불린다”며 “정작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당사자들은 ‘증후군’이 ‘병’이 될 수 있음을 모른다”고 안타까워 했다.

아직까지 일반인들 사이에서 e피로증후군은 물리적인 치료와 자세 교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신경통’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육체적 통증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하루에 8시간씩 컴퓨터 작업을 한다는 민주영(컴퓨터·04년졸)씨는 “손목이 아프거나 눈이 뻑뻑한 것은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런 것이라 쉽게 추측했지만 컴퓨터 작업에 대한 스트레스·불안감은 으레 있는 것이라 생각해 방치했다”며 “이로 인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얻어 2년째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선중선 원장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무리하게 컴퓨터 사용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음악 감상·운동 등 다른 취미를 찾아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e피로증후군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컴퓨터 사용시간을 갑자기 줄여버리면 오히려 ‘금단현상’이 일어나 증세가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6월 대한의사협회는 컴퓨터 사용자들이 정기적으로 일어나 움직일 수 있게 권고하는 문구를 컴퓨터에 부착하도록 음반·비디오물·게임물법 개정안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이 관계자는 “e피로증후군은 심화될 경우 정신적 질환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 이용자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