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17분

꾸륵, 꾸르륵…촤아악~

꾸르르륵, 꾸륵…촤아악~

중국에서 청하는 두번 째 취침. 자다 말고 화장실을 들락거린 게 벌써 네 번째다. 하늘이 노란지 빨간지 확인할 정신조차 없다. 온 몸은 방금 전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린 휴지 네 칸처럼 흐물흐물하다.

'잠들면 괜찮겠지.' 양 한 마리, 두 마리…오십 마리쯤 셀라치면 어느 순간 내 입에서 오십 한 마리가 아닌 '으악' 외마디 비명소리가 터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화장실행. 새로 꺼내 놓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하룻밤 새 반도 채 남지 않았다.

떠나오기 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소리는 다름 아닌, '중국에선 물 조심, 음식 조심!'

'물 조심'은 중국에 처음 온 한국인들이 의례 겪는 배탈의 원인을 '물'이라 진단한 자들의 조언이며, '음식 조심'은 기름진 중국 음식으로 인해 비만증을 얻어 온 또 다른 유경험자들의 조언이다.

나는 좁은 한국 땅에서조차 다른 지방에 가면 어김없이 물갈이를 하는 위인이다. 때문에 저들의 조언 때문이 아니더라도, 중국 땅에서 어쩌다 입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 한 방울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리라 다짐했더랬다. 또 가정관 지하1층에서 기생하던 2년 동안 짊어진 15kg의 지방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인지라 밥알 한 톨 역시 예사로 넘기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었다.

그렇다면 중국에 도착한지 하루 만에 물과 음식, 그리고 나 사이엔 어떤 교류가 있었기에 이 날 밤, 내 뱃속은 이리도 요동을 쳤단 말인가.

먼저 물을 살펴본다.

중국은 기숙사 방방마다 보온병이 있다. 비단 유학생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물은 꼭 뜨겁게 마셔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대련 교통대학의 유학생 기숙사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내 방에도 보온병이 있고 건물 2층엔 끓인 물을 받는 곳이 있다. 심지어 난 이 끓인 물을 받아다가 한국에서 짊어지고 온 커피포트 ㅡ 이거 들고 온 사람은 역사상 나 밖에 없단다 ㅡ 로 한 번 더 끓여 먹었을 정도로 물을 조심했다. ㅡ 물론, 지금은 첫 번째 절차는 생략하고 그냥 수돗물을 받아 커피포트에 끓여먹고 있지만, 처음 2주간은 저 번거로운 작업을 계속했더랬다 ㅡ

'단 한 모금'을 제외하고는 종일토록 입천장이 데일지언정 뜨거운 물을 음용했음에 틀림없다.

그럼, 이번엔 음식.

평상시 먹던 것 외에 새로운 것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소심함은 중국에 와서도 변치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미숫가루와 우유로 첫날 저녁과 이 날 점심을 때웠다. 아, 아침은 기숙사 식당에서 공짜로 주는 죽과 빵을 먹었다. ㅡ 다양한 죽이 나오며 만토우(馒头=중국찐빵)와 짜오즈(饺子=중국만두), 그리고 대여섯 가지의 반찬이 제공된다. 지금도 매일 맛있게 먹고 있다 ㅡ 혹여 나태함이 나의 중국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까봐 매일 아침 운동장 뺑뺑이를 돌기로 마음 먹고, 이 날 아침 첫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도 미리 밝혀둔다.

'단 한 끼'를 제외하고는 분명 이상한 음식이라고는 냄새조차 맡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배탈 사건의 실마리는 위의 '단 한 모금'과 '단 한 끼'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 '단 한 모금'과 '단 한 끼'가 거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발생했기에 더욱 확실해진다. 어디까지나 비록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아노미 상태에서 내린 결론이긴 하나, 지금 생각해봐도 배탈 사건의 범인은 이 날 저녁식사임에 틀림없다.

얘기가 길어지겠지만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중국으로 떠나오기 보름 전. 연수과정을 밟을 학교로 대련교통대학을 선택하고 나서 이런저런 정보나 얻어 볼 요량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커뮤니티 하나를 발견했다. 지극히 간명하고 특색 없는 '대련교통대학'라는 이름의 카페. 카페 주인은 짱라오스(張老师=장선생님)로, 이 곳 교통대학 유학생부 한국인 담당 빤공스(办公室=사무실) 선생님이다. 직함으로 따지면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으나, 적어도 내 중국 생활에서는 중요한 사람임을 잠시 밝히면서 소개는 다음 글(3부)로 미루겠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샹펑꺼(哥= 오빠,형). 어느 날 그가 카페에서 말을 걸며 부탁 한 가지 들어줄 수 있냐고 물었던 게 사건의 원초적인 발단이리라. 그의 부탁은 중국 올 때 면세점에서 그O타O 담배 두 보루만 사다 달라는 것. 부탁을 들어준다면 거하게 한 밥상 대접한다는 것이 옵션이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밥을 산다는데 당연히 쾌히 응했다. 이리하여 대련에 도착한 다음날, 그러니까 문제의 배탈 사건이 있던 날 저녁, 담배를 전해주기 위해 짱라오스를 통해 샹펑꺼를 만났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죵요우꺼도 함께 했다. 알고 보니, 원래 담배의 주인은 죵요우꺼고 샹펑꺼가 대신 부탁한 셈이었다. 여하튼 담배 전달식을 마치고 약속대로 말로만 듣던 '위대한 밥상'을 얻어 으러 나섰다.

무슨 백화점 식당가로 기억하는데 식당 이용 방법이 독특했다. 일단 공(空)카드를 수령한 뒤, 손님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충전한다. 그리고는 그 카드를 들고 각각의 요리 코너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 다 먹은 후 카드에 돈이 남은 경우는 차액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한국에도 이런 데가 있던가. 워낙에 '방콕족'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난 여기 와서 처음 봤다.

여하튼 죵요우꺼가 칭커(请客=한턱 쏘다)하기로 했고, 100원을 충전했다. 여기서 중국의 화폐체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최대한 간단히 얘기해 보련다. 위엔(元)/마오(毛)/펀(分)이 화폐단위(10分=1毛, 10毛=1元)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元이 약 150원 정도. 그러나 중국에서 1元의 가치는 한국의 100원과 다르다. 예를 들자면, 버스 값이 1元(또는 2元),  1元짜리 볼펜도 있고, 아이스크림이 1元(물론 0.5元, 2元짜리도 있다)이다. 약 700원~800원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될 듯. 따라서 중국 돈 100元이면 한국 돈으로 1만5천원 정도지만 실제 가치는 약 7~8만원 정도?! 보통 학교 앞 식당에서 밥 먹으면 1인당 5~6元 정도를 지불한다. 대충 얼마나 거하게 쏜 밥상인지 감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돈 얘기는 여기서 접어야 겠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미숫가루와 우유로 보호 받던 내 뱃속에 온갖 음식들이 침투했던 것이다. 물론 먹을 때만큼은 행복감에 젖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포만감을 만끽했음을 고백한다. 시켜주는 대로 먹었기에 비록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총 7가지 음식을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단 한 끼'의 정체는 7가지 천연각색의 요리였다. '단 한 모금'은 별거 아니다.

사전 설명을 먼저 해야 될 듯.

짱라오스를 대동한 식사가 예사 식사는 아님을 막 중국에 떨어졌던 이 날 저녁엔 알지 못했다. 저녁 먹자고 하고서는 갑자기 내준 미션이 있었으니, 알아서 음식을 시켜오라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카드며, 충전이며, 이용법조차 낯선 식당에서 보도 듣도 못한 요리들을 알아서 시켜오라니! 더욱이 난 어제 밤 8시 중국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진배없지 않던가.

말 한마디 못하고 밥도 먹기 전에 울음부터 터지게 생겼는데, 짱라오스가 봐줄 사람 같지도 않고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때마침 샹펑꺼와 죵요우꺼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면 밥을 못 먹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나보다 한두 달 먼저 왔을 뿐이지만 이들의 중국어 실력은 나 보다는 백배 낫다(그 비결은 다음 글에서). 결국엔 짱라오스가 거의 다 시켜주긴 했지만 한 동안 진땀을 뺀 덕분에 탈수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일단 물 한 모금 마셔야 음식이 들어갈 것 같았다.

"자! 먹자. 먹어라."

짱라오스가 젓가락을 들자 나머지 두 사람도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저…물 좀 먼저 마시면 안될까요?"

내 조심스런 물음에, 짱라오스가 샹펑꺼에게 4元을 내주며 물 한 병과 콜라 한 병을 사오라고 했다. 여기서 잠깐. 확실히 중국은 마실 물이 귀한 나라다. 콜라가 1元, 물이 3元이다. 가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그렇다.

여하튼 그 순간 죵요우꺼가 짱라오스에게 물었다.

"얘는 찬 물 마셔도 됩니까?"(부산 특유의 악센트를 상기하면서 읽어달라).

짱라오스는 "얜 처음이니까 봐줘라"며 짧게 말을 잘랐다. 죵요우꺼는 내게 눈을 돌렸다.

"아~그럼 안 되는데~우린 찬물 마시면 짱라오스한테 혼난다 아이가."

이 말은 찬물을 마시는 것이 짱라오스에게 있어서 얼마나 많이 '봐주는' 것인지 깨닫게 해줬다. 그러나 이 때 마신 한 모금의 찬물이 밤샘 설사의 원인이 될 줄은 그 자리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물론, 내 배탈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물갈이를 하는 내 체질 때문일지도.

미숫가루만 받아들이던 위가 갑자기 들어온 가지각색의 요리에 이상 반응을 보였을지도.

말 한마디 못하는 주제에 음식 주문하느라고 너무 긴장한 탓일지도.

식전 들이킨 한 모금의 찬물이 주범일지도, 정녕 단 한 모금이었는데…

중국에서 배탈을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신경성 배탈을 불렀을지도.

결국 배탈로 잠 못 이룬 이날 밤 이후로 나는 보름 동안 겁이 나서 일체의 음식을 멀리했다. 미숫가루와 우유, 그리고 토마토와 오이, 기숙사 식당의 아침식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리하여 배탈사건 이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내 몸무게는 줄고 줄어 약 10kg 감량의 기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지금은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사먹기도 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중국음식을 잘 먹고 있다. 한 번의 물갈이가 영원한 토착민화를 불러오는 것인지 어떤 중국 음식을 갖다줘도 하오츠(好吃!=맛있어요!)를 연발하곤 한다. 덕분에 권설음인 츠(ch)발음은 한국인에게 쉬운 발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니하오(你好=안녕) 다음으로 완벽한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 중에는 썅차이(香菜=거의 모든 중국 음식에 들어가는 향이 강한 채소) 때문에 중국 음식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ㅡ 그래서 어떤 식당 주인은 한국인이다 싶으면 썅차이 빼주냐고 묻기도 한다 ㅡ 나는 잘 먹는다. 단, 앞서 밝혔다시피 매일 아침의 운동장 뺑뺑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보름간의 의도하지 않은 다이어트 식단과 운동장 뺑뺑이가 다이어트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배탈이 멎었던 셋째 날 아침, 눈에 띄게 달라진 내 얼굴과 몸을 확인한 나로서는 가장 멋들어진 공로패를 'Mr.배탈'에게 수여하고 싶다.

 

보태기1)  8월엔 나가지마, 그 이후

첫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2004년 8월은 내게 있어 필히 조심해야 할 달, 절대 집을 떠나서는 안 되는 달이었다. 적어도 사주풀이에 의하자면 말이다. 이미 8월을 훌쩍 넘긴 지금 과연 나의 8월은 어땠는지 잠시 짚어보고 싶어졌다.

먼저, 첫 글에서 장황하게 읊었다 시피 중국행의 첫 신고식부터 순탄치 못했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리라 믿는다. 또 배탈 역시 같이 대련에 도착한 일행 중 나만 유독 심하게 앓았으니 이 역시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그리고 또 크고 작은 불운들을 열거해 보자면 셋째 날은 까르푸 구경 갔다 돌아오는 길에 넘어져서 무릎을 온통 긁혀왔다. 그리고 보일러 코드가 빠진지 모르고 일주일간을 매일 아침 찬 물로 샤워했고, 온지 보름쯤 됐을 때는 두 번이나 열쇠를 방에 두고 문을 잠군 탓에 보조키를 얻어다 문을 열었다. 8월 마지막주에는 공동 세탁실 물이 넘쳐 복도가 물바다가 됐었다.

그럼, 8월 동안 내게 있었던 크고 작은 행운들도 한 번 열거해 보련다.

먼저 배탈. 이미 알다시피 10kg 감량의 제1 공로자이므로 내게 있어서는 행운이다. 지금은 일부러 걸리려 해도 잘 걸리지 않는게 배탈이다. 죽지 않을 만큼 배앓이하는 것도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찾아오는 행운이 아닌 것이다.

또 내 무릎이 깨졌던 날, 또 다른 유학생은 축구 골대에 매달렸다가 툭 떨어지는 바람에 이가 부러져서 귀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은 보일러. 빤공스 라오스를 불러서 살펴보게 한 후, 보일러 코드가 빠진 것을 알았을 때 앞 방 오빠네는 보일러가 아예 고장나서 고치고 있었다. 나는 열쇠를 방에 두고 잠궜지만, 301호 언니는 잃어버려서 변상해야 했고 313호 오빠네는 열쇠없이 문 열려다 문을 부셔서 방을 옮겨야만 했다. 공동 세탁실 물이 넘치던 날, 세탁실에서 가장 가까운 방은 침대를 들어낼 정도로 물이 들이쳤고 내 바로 옆방까지 물이 들어왔다. 우리 층 물난리 탓에 아래층은 천장에서 물이 샜다고 한다. 내 방은 무사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나의 행복, 다행으로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맞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정도는 괜찮으리라.

무엇보다 '정말 8월엔 나가지 말았어야 했나?'하고 심각하게 의구심을 품게 했던 8시간 연착의 악몽. 속을 뒤집어 놨던 중국 남방항공 측은 기특하게도 전 승객에게 런민비(人民币=중국화폐)로 350元(약 5만원)씩 보상해줬다. ㅡ 물론 승객들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ㅡ 중국에서 유학생의 한 달 생활비는 런민비로 약 1천元~2천元임을 감안할 때 적은 돈은 아니다. 보름 동안은 내 돈 안 쓰고 저 돈으로 살았다. 어차피 도착한 첫 날 마땅히 볼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8시간 기다린 댓가로 보름 동안의 생활비를 얻을 수 있다면 '한판 더'도 가능할 듯싶다.

이쯤하면 별다른 결론을 짓지 않아도, 내가 나의 8월을 어떻게 결론지었는지 누구나 알 것이다. 혹시 8월을 보내고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면 더 좋은 일이 있었을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8월은 너무나 행복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물론 위에 억지로 짜맞춘 듯한 행운들만으로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서 소개될 만남들은 8월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는 인연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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