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로서의 블랙코미디

2시

로리타
스탠리 큐브릭 152분

내겐 너무
이쁜 당신
베르트랑 블리에 91분

매쉬
  로버트 알트만 117분

프론트
    마틴 리트 95분

차례로 익사시키기
피터 그리너웨이 119분

5시

휴관

모두 하고
있습니까?
 기타노 다케시 108분

펄프 픽션
쿠엔틴 타란티노 154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조엘 코엔  116분

일렉션
  알렉산더 페인 103분

 

코미디는 공포나 멜로와 함께 영화역사 초기에 발생한 장르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무성영화시대의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로, 또 50년대 섹스 코미디로 코미디에서 선호되는 하위 장르가 변해왔습니다. 60년대 이후 코미디가 위트를 잃게 되자 블랙 코미디가 성행하기 시작합니다. 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은 신성시되던 모든 권위에 대한 도전과 공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뒤틀린 유머로 풀어낸 블랙 코미디에 열광했습니다. 

블랙 코미디는 코미디의 하위 장르이면서도 흔히 코미디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성격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선 코미디와 같지만, 코미디 장르 영화가 일시적으로나마 억압된 긴장감을 안전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웃음을 제공해준다면 블랙 코미디의 웃음은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블랙 코미디는 우울하거나 무서운 내용을 익살스러운 요소와 결합한 희극이라고 정의됩니다. 대개 사회에 대한 우울한 유머나 잔혹하고 통렬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지만 분명 웃음을 주기에 희극입니다.  명랑한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와는 달리, 블랙 코미디는 관객을 웃기면서도 존재의 불안과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결정적으로 코미디에는 그 밑바탕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지만, 블랙 코미디는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불신·절망을 드러냅니다. 

또한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조롱하고 비웃는다는 점에서 블랙 코미디는 풍자와 유사하지만, 블랙 코미디 영화의 잔혹성과 그 저변에 깔린 어둡고 염세적인 시선은 풍자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중요시되는 윤리나 규범, 두려움과 신성의 대상마저도 희화화한다는 점에서,  풍자가 넘지 못하는 선을 블랙 코미디는 망설임 없이 넘어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풍자는 대체로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결말에 뉘우침이나 교훈이 있을만한 여지를 남겨두는 반면, 블랙 코미디의 결말은 이런 목적의식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이것은 블랙 코미디 장르 영화이고 저것은 아니다' 식으로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장르는 특별히 전문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중심적인 인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임의로 나누어졌다고 봐도 별다른 무리가 없는 편의적 용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과 영화를 연결 지으며, 보기보다는 영화와는 조금 거리를 둔 채 조롱하고 냉소하며 영화를 즐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툭툭 던져지는 상황에서 블랙유머를 열심히 찾아내려 하는 자신을 느끼는 순간, 영화와 소통하려고 애쓰다가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허탈한 쓴웃음을 짓는 순간, 내가 블랙 코미디의 마지막 냉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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