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친척들의 화제는 며칠 뒤로 잡힌 사촌 오빠의 결혼이었다. 신혼여행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혼수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른들은 신랑이 집을 마련하는데 1억이 넘는 돈이 들었고 예단 값도 만만치 않으니 신부도 이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혼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결혼을 혼수 문제로만 치부해 버리는 어른들을 보니 갑자기 결혼하기가 두려워 졌다.

얼마 전 한국의 혼수문화를 비판한 기사가 가장 많이 읽힌 인터넷 뉴스로 선정됐다. 삐뚤어진 혼수문화로 인해 변질돼 가는 결혼의 의미를 지적,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현재 겪고 있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결과 70% 이상이 혼수라 답했다고 한다.

혼수와 같이 물증으로 혼인을 약속하는 행위는 삼국시대부터 내려 온 우리의 고유한 풍습이다. 기록에 의하면 남녀가 혼인을 약속한 후, 남자는 술과 고기를 가지고 여자 집으로 가서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음식을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결혼을 축복 받았다. 술과 고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격려와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이 본래 혼수가 추구했던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이 오가는 혼수가 아닌 축복이 오가는 ‘정신적인 혼수’다. 혼수를 주고 받는 행위 안에는 한평생 좋은 파트너가 될 예비부부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과 애정이 포함돼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질을 나누는 과정에서 얻게되는 축복보다는 물질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올 봄 윤달을 피해 결혼을 미뤘던 예비부부들이 이번 가을에 대거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날짜를 하나씩 따져가며 결혼에 적합한 길일을 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화목한 결혼생활에 대한 정성어린 마음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런 예비부부의 꿈과 희망은 평월보다 하루가 더 많아 ‘썩은 달’이라 불리는 윤달처럼 정도를 지나친 혼수문화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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