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유학은 다르다.
유학은 곧 가라앉을 것만 같은 배의 노를 저으며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배를 끊임없이 정비해줘야 하고, 혹 정비하는 법을 모른다면 스스로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 태풍이 몰아치고 우박이 떨어져도 바다 위에 있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날씨가 좋다고 노래만 부르는 베짱이 같은 삶은 곤란하다. '하늘이 맑구나. 옳커니, 그럼 오늘은 밀린 빨래를 해야지' 란 자세가 필요한 거다.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밖에 나가려는데 입을만한 옷들이 모두 빨래 통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렇듯 유학은 또 하나의 삶인 거다.

반면, 여행은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과 같다. 바다 위에서라면 부딪히고 맞서 싸워야 했던 것들을 이젠 피하면 그만이다. 숙소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면 그만이고, 싫은 사람이 있으면 피해가면 그만이고, 도시가 마음에 안 들면 떠나면 그만이다. 가고 싶은 곳으로 길은 열려 있다. 능력껏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되는 것이 여행인 것이다.

내가 떠나간 오타와는 몬트리올에서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지만 토론토나 몬트리올, 밴쿠버에 비해 인지도도 적고 또한 무척 작은 도시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런던이나 파리 같은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 명성에 비해 너무 작았다고 말하는데, 오타와는 그것보다 조금 더 심각하게 작다. 유럽의 도시들은 시내만 다니는 것이라면 대부분 걸어서 볼 수 있지만, 오타와는 다운타운에 서서 고개만 90도씩 돌리면 명소들을 거의 볼 수 있을 정도니까.

오타와에서는 5일을 머물렀지만,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다. 게으른 여행자였다.
그나마 본 것 중에서는 국회의사당 라이트 쇼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오후9시와 오후10시에 각각 30분씩 영어와 불어로 진행되는데, 순서는 매일 바뀐다. 그러니까 월요일 9시에 영어, 10시에 불어로 진행되면 화요일은 9시에 불어, 10시에 영어로 진행된다. 라이트 쇼는 국회의사당 벽을 배경으로 하는데, 나레이션과 함께 라이트가 현란하게 비춰진다. 영어나 불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또한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생각해 볼 때 굉장히 독특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사당에서 라이트 쇼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라면 가끔은 밤새 일을 해야지' 라는 생각과 '어디 신성한 국회에서...' 라는 생각이 낳은 상식이랄까? 하지만 캐나다의 경우 라이트 쇼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달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사람들도 끊임없이 찾는다. 한국과는 다른 곳인 거다.

라이트 쇼의 주제는 ‘캐나다 정부가 생각하는 캐나다의 정체성’으로 함축될 수 있다. 짧은 영어로 내가 이해한, 라이트 쇼에서 말하고 있는 캐나다의 가장 큰 특징은 추위, 그리고 다양성이었다.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들이 캐나다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길 바라고, 이민자들이 캐나다의 문화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지켜나가길 바란다. 건강한 다양성에서 국력이 나온다고 믿고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영어 사용자가 늘어나고 불어 사용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고민거리라고. 젊은 사람들이 불어를 점점 배우지 않기 때문에 퀘백 특유의 불어권 문화가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캐나다 문화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거다.

라이트 쇼와 몇몇 미술관을 간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호스텔에서만 살았다. 돌아다니기 귀찮고 돈이 별로 없다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여행의 목적은 미세스 C와 최대한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이기도 했으므로) 가장 큰 이유는 호스텔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바이워드 마켓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내가 묵은 호스텔은 작고 또 약간은 지저분했지만 무척 아늑한 곳이었다. 거실, 베란다, 부엌 등이 묘하게 연결돼 있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어울리기 좋은 구조다. 또 방마다 몇 호실이라고 쓰여져 있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라고 이름 붙어있고 침대도 ‘베를린 장벽’, ‘사하라 사막’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등 살펴볼수록 아기자기한 구석들이 많았다. 호스텔을 만든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스텔에서는 보통 오후 늦게 일어나 점심을 만들어 먹고 거실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밤이 되면 캔맥주를 들고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밤 늦게 잠이 들었다. 호스텔 거실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얼굴에 주근깨가 많고 작고 통통한 베티는 호주 출신으로 나와 동갑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 남미, 유럽 등을 여행하고 지금은 영국 런던 근교 옥스포드에서 6개월째 살고 있다. 펍에서 일하다가 만난 요리사 남자친구와 일년 째 사귀고 있는 그녀는 캐나다를 두 달 간 여행하고 이제 영국으로 갈 예정이다. 너의 모든 여행이 끝나면 무엇을 할거냐고 물었을 때 베티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토모에는 일본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무척 동안이지만 스물 여섯 살이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와서 돈을 벌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나도 학생 비자로 캐나다에 왔지만, 단순히 어학연수를 할거라면 학생비자보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오는 편이 더 저렴하고 얻어갈 수 있는 부분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벌면서 영어를 배울 수도 있고 또 그만큼 더 다양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오타와를 떠나기 전날, 오타와 근교로 캠핑을 가자고 제안한 제이는 캐나다 사람이다. 그는 원래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3개월 전 벌어놓은 돈을 다 모아 숲을 샀다. 지금은 숲에 있는 텐트에서 생활하면서 혼자 오두막을 짓고 있는 중이다. 나무들을 최대한 베지 않으면서 오두막을 짓고 숲에서 사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목표다. 일 년 안에 다 짓고 싶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 현을 만났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밤 만나 이야기를 했다. 현은 중학교 때 캐나다로 혼자 유학을 왔고, 이제 유학 온 지 7년째가 되어 간다. 건축에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그는 지금 읽고 있는 일본 건축가가 쓴 책에 대해 얘기했다. 나와 동갑이지만 꽤 나이가 들어 보이고 말하는 것도 진중하다.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을 할 줄 아는 드문 사람이다. 현의 여자친구는 불어를 쓰는 캐나다인이다. 현은 그녀에게서 운명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가 자신의 운명인지 아닌지 의심을 품기도 전에 믿게 돼버렸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했다.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여자친구와는 학교 때문에 떨어져 있는데 무척 보고 싶다고 했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나와 현, 토모에 그리고 중국인 여행자 세명이 모여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근처 중국인 가게에서 산 ‘너구리’ 라면을 끓이자, 중국인 아저씨 한 명이 와인 두 병을 가져와 다같이 밤새 수다를 떨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아시아 전역에 퍼진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특히 중국인 여행자들은 ‘My Sexy Girl’, ‘My Annoying Girlfriend’ (둘다 엽기적인 그녀)에 열광하고 있었다. 영화 배경음악으로 나온 신승훈의 ‘I believe’를 중국말로 부를 정도니 말 다한 거다.

그 다음 날 아침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호스텔을 나왔다. 일본인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서로 아쉬워하며 연락처를 주고 받았지만 아무래도 연락을 하진 않을 거 같다. 예의상 주고 받은 건 아니지만, 여행과 삶이 이어지기란 쉽지 않은 법. 굳이 인연의 끈을 늘이지 않더라도 여행에서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의 이름은 잊어버릴지 몰라도 그들과 오타와에서 보낸 시간만큼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테니까. 그저 이번 여행에서는 나처럼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과 방황은 나쁘지 않다는 것, 그러한 것에서의 위안과 다시 몬트리올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빨래를 맡기러 가는 현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다. 현과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꿈과 바람, 한국, 캐나다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나쁜 내가 그나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퀴’에 대한 이야기다. 현은 길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본다고 했다. 그런데 바퀴의 생김새가 자동차마다 거의 다 다르다고 했다. 바퀴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각기 다른 모양을 생각해 내느라 고생을 했을지 생각해 보라고. 세상은 이렇게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현이 가리키는 자동차들을 보니 정말 그랬다.

마침내 버스가 왔고, 버스를 타기 전에 현은 갑자기 포옹을 했다. 그것은 남녀 사이의 끈적한 껴안음이 아니라, 동지애로 가득 차 있는, 기운 차고 힘이 되는 것이었다. 현의 포옹에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렇게 현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엔 비가 무척 많이 왔다. 집에 도착하자 변한 것은 없었다. 심술궂은 미세스 C도, 샤워를 할 수 없는 욕실도. 이렇듯 여행 중에 ‘나(Na)’로 있을 수 있었던 귀중한 순간들은 팍팍한 ‘현실(Cl)’에 부딪히면서 평범한 ‘소금 기둥(NaCl)’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집 앞에 나갔을 때 하나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 온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날씨는 맑은 가운데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다. 그리고 동네 버스 정류장 옆에 놓여있던 자동차 바퀴. 그 안에는 간밤의 비를 힘껏 머금은 자주색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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