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원 기자의 DMZ 답사기

안개 자욱한 새벽 무렵 내 눈 앞엔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마침 저기 멀리서 산양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울음소리의 근원을 찾아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긴다. 걸을 때마다 내 몸에 스치는 장성한 나뭇가지는 나를 할퀴며 길을 인도한다. 걸어간 그 곳엔 산양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산양이. 나는 그 애의 단단한 뿔을 어루만지며 그 애의 눈을 보고 이야기한다. "잘 있었니?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러면 산양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특유의 투명한 눈으로 나에게 정다운 대답을 건네온다.

'안개 짙은 초원의 한 가운데에서 산양과 이야기한다.' 이것이 내가 상상한 비무장지대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나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결국 인정했지만 지금 다시 그 곳에 간다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학보사 기자가 된 후,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제대로 된 방학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학기 발행될 학보를 위해ㅡ';그래봤자 10부 정돈데 뭐' 했던 내 마음은 이미 현실 속에 썩어 문드러진지 오래다.ㅡ꼬박꼬박 학보사에 얼굴 들이밀어야 하는 건 비단 통학의 번거로움 때문만이 아니라 여유로운 삶에 대한 억압이었다. 이런 나에게 비무장지대 취재는 명목 좋은 돌파구였다. 먼 여행에 대한 불안감-참고로 나는 장이 안 좋다-도 쥐구멍을 찾은 기쁨에는 못 미쳤다. 나는 그야말로 신났다.

11박 12일에 걸친 비무장 지대 취재 여정은 생각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기가막힌 장관에 설레는 것도 잠시, 도합 7kg에 달하는 카메라 두대를 양 어깨에 둘러매고 이쪽 주머니엔 커다란 망원렌즈를, 저쪽 주머니엔 필름을 한 가득 채워넣고 나면 다시 나는 풍경에 젖은 자유인에서 취재를 하는 사진기자로 돌변해야 했다. 밥먹고 사진찍고 잠자고가 내 일상의 전부였다. 수두룩 빡빡한 학보사의 다각적 업무 수준에 비해 단순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 땐 왜 또 그게 힘들다고 느꼈었는지 모르겠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시는 또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목이 탔다. 산,들,강으로 흠뻑 젖은 두 눈에 다시 높은 건물과 달리는 차들을 담아야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실망감을 넘어 어떤 상실감마저 안겼다.

그리고 한 주, 두 주가 흘렀다. 그 곳에 다녀온 뒤 한동안 이 곳에서도 자연의 공간만 보고 자연의 소리만 들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좋아하는 TV도 안보고 늘 귀에 틀어막고 있던 이어폰도 뺐다. 하지만 도시의 철저한 문명화에 나는 또 적응해버렸고 지하철에 찡기고 삶에 찡기며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일분 일초가 뼈에 새겨질 줄 알았던 그 곳에서의 생활은 이제 너무 좋았다는 말 한마디로 요약될만큼 작아져 버렸다. 하지만 영영 잊혀지진 않을 것 같다. 그 곳에서의 12일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면면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학보사를 하면서 아니 평생을 살면서 빼놓을 수 기억을, 나는 이미 챙겨 넣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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