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129분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장기는 환상에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가 현실성을 부여한 환상적인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침대가 날아다녀도,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과 같은- 어쩌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져도 관객들은 그것이 마치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 인양,  '저럴 수도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쿠스트리차 감독의 그러한 장기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서로 딴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자레와 부바마라의 결혼식이 착착 진행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우울하기 보단 낙관적인 마음이 되어 이 영화를 지켜본다. 거위털이 이리저리 날리는 식탁 아래서 키스하는 이디와 자레의 모습, 키 차이가 1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부바마라와 벨리키의 행복한 모습, 조용히 다락방에 죽어있던 그르가 할아버지가 예식에 딱 맞추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이미 예상이라도 했듯이 말이다.

말하자면 관객들은 황당하기 보다는 현실과는 좀 동떨어졌지만 세상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수 있을 법한 행복한 이야기로 그의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마술과 같은 환상성에 현실적인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 이란 의미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영화는 감독이 언더그라운드로 은퇴를 선언하고 오랜 공백기를 가진 뒤 개봉됐다. 전 영화의 정치적 논쟁에 대한 상처와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우리가 이 영화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려내는 환상적인 행복감 뿐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