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140분

한평생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종족, 집시. 그들의 삶은 제도권에서 평가하기에는 분명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그들은 실업과 굶주림으로 인해 대다수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마술’을 발견한 영화가 있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은 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영화다. 주인공 페르카니를 비롯해 그의 집시 가족들은 분명 불행한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가 타락하기 전까지 집시 특유의 낙천성과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들의 삶은 불행이란 말을 쓸 수 없게 한다. 특히 그것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초월해 삶 자체의 표현에 녹여낸 감독의 화면은 집시 고유의 아코디언 음색과 어울려 관객들에게 ‘집시의 멋’을 한껏 느끼게 한다.

하지만 결국 영화는 페르카니의 타락과 함께 그의 파멸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마술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들의 현실, 삶 자체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어머니의 새하얀 베일을 보며 죽어 가는 페르카니의 눈에서 그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또 다른 환상의 현실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순환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감독이 추구한다는 그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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